아들이 우리 옆에 잠들어 있다는 현실 하나 만으로 느긋하게 늦잠을 즐기고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눈을 떠 주변을 살핀다. 맑은 햇볕이 창에 가득하고 실크 천 민박집
천정 벽지가 낯설어 보인다. 넓은 방 내 좌측에 아내와 딸이 잠들어 있고 내 우측 한편에
아들이 잠들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아침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으련만 깊은 잠에서 들
헤어날 줄 모른다. 신병 생활에 얼마나 긴장하고 힘 들었으면 이 늦은 시간 까지 깨어나지를
못할까!!? 측은하고 안쓰러운 생각에 이불자락을 여며주고 행여나 내 작은 움직임에 잠에서
깰까봐 조심스럽게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방을 빠져나와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민박집 바로 앞 차도 건너편 넓은 강변에 백사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작은 틈새로
물길이 굽이져 흐른다. 내린천이라 말만 듣던 그곳이 바로 이 곳 일까 짐작하며 오늘을
어떻게 무슨일로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며 궁리를 해 본다.
바람이 좀 있긴 하지만 차갑진 않다, 햇볕이 맑고 따뜻하니 저 백사장서 사진이라도 좀
찍으며 호기를 좀 부려볼까 하고 생각을 하니 그다지 나쁘진 않을것 같다.
계단을 내려와 방으로 와서 살며시 아내를 깨운다.(9:40) 아침식사를 준비하자 하고
조심 스럽게 음식들을 챙긴다. 잠시 후 딸아이와 아들이 기지개를 힘껏 치며 몸을 뒤척이더니
이불을 걷어내며 벌떡 일어난다. 좋은 꿈 꾸고 잘 잤느냔 아침인사를 나누고 세면장으로
가는사이 압력밥 솥이 경쾌한 신호음을 내기 시작하고 아들이 좋아했던 불고기 냄새가 온
방안을 진동한다. 참으로 오랫만에 우리 온 가족이 정답게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행복한 아침
식사를 즐기는 느낌이다. 식사를 마치고 차도 앞 건너 천변 백사장에서 사진이라도 좀 찍어
보자고 말하니 애들도 아내도 좋겠다고 한다. 이곳 저 곳을 구경 한답시고 시간 허비하지
말고 그냥 주현이가 편하게 잠이나 실컷 재우고 충분히 쉬게하는 데 이번은 시간을 맞추자
이르고 서둘러 물린 밥상의 설겆이를 손수 자청한다.
커피를 타서들고 나갈 채비를 하다 문득 어제 밤에 온다고 하던 친구는 참 어떻게 됐을까?
그 친구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나니 마음이 급해진다. 핸폰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오려니
손에든 핸드폰에 진동음이 울린다. 역시나 친구의 반가운 음성이 내 대답을 기다린다.
어제밤엔 사정이 있어 못 오고 지금 막 출발을 했으니 넉넉 잡고 한시간만 기다리란다.
오랜 군생활 끝에 양양의 모 부대에서 군속으로 군 업무를 보고있는 친구!! 죽마고우이자
군대생활 역시 강원도 같은땅 홍천의 지척에서 복무하며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
시골서 자라며 그야말로 둘도 없는 라이벌 관계로 수도 없이 다투고 경쟁하며 우정을 키웠던
친구, 가끔씩 그가 서울로 때론 내가 양양으로 다니며 술잔을 나누고 하는 정다운 친구다.
11시 30분이나 됐을까 싶은데 어디 쯤 이냐며 근처에 와 있다고 한다. 나가서 친구를 맞아
방으로 인도한 후 서로들 인사를 나누고 친구의 권유와 안내로 한계령 정상을 가 보기로 했다.
3~4십분을 계곡 절경과 비경의 비탈길을 돌고 돌아서 가니 생각지도 못했던 눈덮힌 하얀
정상이 눈길을 사로 잡고 나도 모른 사이에 비명을 지르며 정상을 밟는다. 가지와 줄기만
남은 벌거벗은 나무를 온통 하얗게 석고를 바른 듯한 눈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우리가
서있는 정상으로 굽이 굽이 이어진 비탈길이 형용하기 힘들 비경의 아름다움 그 자체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연상케한 암벽, 겹겹이 둘러진 산에 은빛백색 세계를 간직한 설국!!
이곳 저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족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사진쟁이 폼을 잡는 친구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배꼽을 틀어쥐고 웃고, 호떡을 사서 들고 뜨거운 차를 뽑아 호호불어
마시며 세상일을 모두 잊고 그저 편하고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한 별천지에
와있는 듯한 맑고 투명하고 후련한 기분이다.
이곳 저 곳을 가보자 하는 친구의 권유를 물리치고 정상을 내려와 민박집으로 들어왔다.
친구랑 함께 점심을 마치고 또 다시 어디론가 나가 보자는 친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아들을
쉬게 해주고 싶은 내 생각을 친구한테 이해 시키고 둘만 친구의 차를 타고 나섰다.
내린천과 (?)이 합류하는 계곡들을 두루 돌며 지난 여름 수마가 휩쓸고 간 흔적들에 혀를 내
두르기도 하고, 깊은 산 중 오막살이 집을 발견하곤 노후에 우리들의 안식처를 설계 해 보기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곡과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다. 대한민국 최고 높이의 번지
점프대 에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민박집 에버그린으로 돌아왔다. 우릴 한계령으로 이끌어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었던 친구는 이내 돌아가고 다시 우리들 만의 시간이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아들은 잠이들어 있는 듯 하고 딸애와 아내는 T/V 를 보는 듯 하다.
이윽고 시간은 귀대시간 7시 30분을 향해 줄달음 쳐 가고, 이제는 우리도 귀가를 서둘러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5시쯤 아들을 깨워서 외박 선물을 어떻게 했으면 싶냐고 물었지만 녀석은
생각 해 보지도 않았다며 필요없다고 한다. 나로서도 판단하기가 좀 애매해 일단 귀대 및 귀가
준비를 서둘렀다. 아들 눈치를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심각해 뵈는 표정은 아니다.
차에 짐꾸러미를 다 싣고 에버그린 앞에서 사진을 몇장 찍는다.
중심가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아빠의 경험을 들려주며 당부말을 전하고 저녁생각이 없다는 아들을
이끌고 아들이 평소 좋아 했던 만두가게로 들어간다. 야채만두와 만두국 그리고 김밥을 시켜
석식을 간단히 해결하고 아들을 앞세워 편의점을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들여 보낼 순
없을것 같아 군대에선 대부분 사제 담배라면 누구나 좋아했던 옛 기억을 되살려 담배라도 사 들려
들어가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들한테 상황 설명을 하고 담배를 고르게 하니 열 대여섯
갑을 고른다. 위병소 통과하기가 좀 거북스럽다고 한다. 다시 두갑을 더 달라고 해서 미리서
위병소 근무자 한테 선심을 쓰라 일르고 주머니에 넣어주고 나니 그제사 마음이 개운해 짐을
느낀다. 아들을 불러 마음을 단단히 갖게하고 부대로 향한다. 딸애도 아내도 그리고 나와
아들도 서로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5분여를 달려 위병소 앞에 차를
세운다. 아내가 함께내려 아들을 안아주고 나서 아들을 돌려세운다. 아내가 차에 오르자
백미러를 통해 아들이 위병소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발길 떨어지지 않은 엑셀레터를
마지못해 화난듯 힘껏 밟는다. 부~웅!!~
한동안 달리는 차안에 정적이 쌓인다. 선뜻 누가먼저 입을 떼지 못한다.
아~ 참으로 아쉽고 서운타. 그리고 너무너무 허전타. 그렇게 다시 돌아간 아들 녀석의 맘은 오죽
더 아쉽고 허전하고 아플꼬!!?? 근심과 걱정이 가슴을 누르지만 이제는 아들을 믿고 마음을
달래야 한다. 조용하게 딸애와 아내를 불러 "우리 이번 여름은 이곳으로 겸사겸사 피서를 오자"
라고 제안하며 분위기를 이끌어본다. 아내도 딸도 그것 참 좋겠네 하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다. 아들아!!~ 기다려라!!~ 백일휴가도 있고, 너 하기나름으로 포상휴가도 있을테고
정기휴가도 있을테니 부디 몸조심하고 항상 건강해라! 우리가족 너를 위해 정성으로 기도하마.
짙은 암흑속을 거침없이 달리며 우리가족 안전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해 본다.
함께한 1박 2일이 우린 물론이거니와 아들한테도 참으로 꿈만 같은 시간 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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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서울 도착!!
3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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