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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황홀한 아픔 맘껏 뽐내 보지도 못한 채 시름시름 사라져 버림 어떡하나, 조마조마 한 내 맘을 겨우 눈치챈 것처럼, 늦가을 가뭄에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 가는 단풍의 목마름을 때늦게나마 용케 안 것처럼, 시원스럽게 줄기찬 빗줄기를 아낌없이 퍼붓던 지난 주말 밤 세찬 폭우에, 산자락 오솔길 흔적마저 지운 채 빼곡히 포개고 누운 낙엽의 속삭임과 함께, 이 아침 여명을 머금은 만추의 가을색이 한껏 생기를 찾아 본연의 제 빛으로 뭉클 되살아났다. 망연한 이 가을을 기억하기 위한 헛헛한 목마름이며 가을이 남긴 처연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그리움이었던 것을, 차마 마음 주지 못한 채 끝내 외면하고 돌아서야만 했던 먼 세월 속 그 소녀를 향한 그리움처럼, 삶에 쫓기고 세월에 휘둘려 벼랑 끝에 내몰린 노 나그네의 어쩌지 못할 목마름처.. 더보기
이제 이 가을도 보내야 할 때 이제 가을을 보내야 할 때입니다. 예순다섯 해를 습관처럼 줄곧 그러했듯이 그냥 또 그렇게 놓아 보내야만 합니다. 깊은 공허와 짙은 허무 시린 적막과 저린 고독의 바다로부터, 애툿한 기억 속 고운 추억만을 남겨 무수히 포개 널리고 흩어진 저 낙엽들의 방황을 뒤로한 채, 애잔한 그리움과 처연한 동통의 고통을 묵묵히 참고 삭이며, 이젠, 타다 남은 석양노을에 불씨 하나를 살려 가슴 안에 촛불처럼 환히 밝히고, 혹한이 휘몰아칠 겨울의 강을 한 걸음 한 걸음 건너야만 하기에. 2022년 11월 7일(立冬) 더보기
만추의 여백 길고 먼 항로에서 잠시 멈추고, 용마산 만추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며, 또 한 가을의 뒷모습을 쫓아서 끈적한 기억만을 빼곡히 담습니다. 차도 변을 정처 없이 떠도는 가로수은행잎의 끝 모를 방황과, 그 방황마저 짙은 연무 속에 가둔 채 침묵하는 도심과, 이미 굳은 채로 작은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는 갈참나무의 애절한 속삭임과, 아직 가시지 않은 단풍잎의 취기에서 지난봄의 아련한 추억과 엊그제 느지막이 핏빛 선혈 자국과, 열기 내린 충혈된 해의 새빨간 토끼눈으로부터, 비로소 홀가분히, 마음의 여백을 찾아갑니다. 2020년 11월 15일 더보기
유명산 가을 몰이 겨울로 가는 11월의 첫날 가랑비 속으로 가을몰이를 떠나다. 유명산 면면이 울긋불긋 오색이요 찻길 굽이굽이 핏빛 단풍이라. 추수를 마친 나락 논에 공허만이 난무하고 선혈이 낭자한 단풍잎은 추풍낙엽이라. 마지막 비상의 바람몰이를 위한 성스러운 의전차림인가? 또 다른 가을을 기약하기 위한 이 가을의 피날레인가? 화려한 자태에 설레는 마음 초연한 용모에 먹먹한 가슴으로, 중미산 몬당 선어치고개 집 창 가까이 자리를 틀고 앉아, 두부전골 후후 불어 붉어진 가슴 달래고, 이 가을을 배웅하며 허탈함을 애써 달래다. 2020년 11월 1일 (중미산 선어치고개에서) 더보기
가을몰이 벌겋게 취해서 꼭지가 비틀어진 채 달랑달랑 실낱같은 한 연의 끈을 차마 놓지 못하고, 아직은, 아직은 가을이라 돌배기 생떼를 쓰듯 합니다. 11월 끝자락, 이미 벌써 또 한 겹의 세월은 빼곡히 쌓여져가고 소설을 지나 한겨울 속으로 성큼성큼 가는데, 백발의 진갑노객 도둑맞은 허탈감으.. 더보기
가을 여흥 만추를 감흥 키에 부족함 없는 오후, 진노랑 저고리 반쯤 벗은 도심 가로수 은행목, 색동옷 살며시 거두고 갈색 저고리 추스린 가을 산, 하늘 끝 깊숙한 가슴시린 공허, 그 하늘 향해 빈 손 치켜든 갈참나무의 처연함, 발밑에 바스락 거리는 낙엽의 애절한 속삭임, 앞가슴에 스쳐 부는 써늘.. 더보기
만추 텅 빈 들녘, 홀로 죽은 허수아비처럼 가슴 멍멍한 서글픔이여!!~ 시월의 마지막 밤, 숙명의 바다를 건너야 될 가슴 시린 허무함이여!!~ 너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내가 슬픈 계절이여!!~ 연연치 않은 그 초연함에 내가 서러운 가을이여!!~ 내가 건너다 빠져죽을 저 시퍼런 고독의 바다여!!~ 내.. 더보기
취풍(醉楓) 다사다망한 10월 바쁜 일상으로부터 한동안 접어두었던 메모 첩을 꺼내는 것처럼, 조금은 낯설고 색다른 느낌으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산행 길에 나선다. 도심을 맴돌던 열기마저 을씨년스럽고 세월은 벌써 가을을 덜미 잡은 채, 습관처럼 또 그렇게 겨울을 예고하고, 벌겋게 취해가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