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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만호형의 귀천


전생에서
무슨 큰 잘못을
했었기에
태어나 모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 마을 저 동네로
전전긍긍하며
아비 등에 업혀
젓 동양으로
명줄을 이은
기구한 팔짜를
타고나,

이 세상
온갖 고생
맨몸으로
감당하면서도
조금도
주늑들지 않고
굴하지 않으며,

잡초처럼 꿋꿋이
자신의 삶을
서울 한 도심에
당당히 뿌리 내린
강인한 형께서,

고작 한 달여
투병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히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지,
구천 가는 길
잠시 멈추고
어디 말이나 함
들어보고 싶소 만,

이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홀연히 떠났기에
그럴 수 조차 없음이
더 허망하고
가슴이 미어질 뿐,

매번 통화 때면
바쁘다~
일 한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시던 형이,
그저
밤낮없이 일에 미쳐
죽을 둥 살 둥 하던 형이,
어떻게
그 바쁜 일상을
다 내팽개쳐 놓고
그리 쉽게
이승을 뜨셨는지?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이 허망함과
슬픔을
감당하기에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돌아갈 땐 순서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 어느 누군들
예외는 없을터
불쑥 두려움이
앞설 따름이오.

그렇게 떠나가신
그 맘인들
오죽하겠소 만,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어
스스로 눈을 감으셨던지?
그 부지런함을
천상에서 알아 채
서둘러 차출을 해 갔든지,

너무도 황망하고
애통하기 짝이 없지만,

이왕지사 그렇게
훌쩍 떠났으니
이승에 더 이상
미련 여한 두지 말고
바람처럼 새털처럼
자유롭고 가벼히
훠이 훨훨
잘 가시오.

어젯 밤
서울숲
재활요양병원에서
잘 보셨잖소?

그나마
임종을 지킨
아들 광일이의
굳은 표정과,
함께한
여럿 친구들의
가슴으로 전하는
기도와,

지금
잘 보시잖소?

서울 동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비록
헤어진 여인이지만
친정 친,인척 가족들
줄줄이 달려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밤새 빈소를 지키는
조카와 오빠를 비롯,
통곡을 한대도
시원찮을 처지에
서럽게 서럽게
흐느끼는 저 여인과,

막내야~
막내야를 부르며
남이 되어버린 여인과
함께 껴안고 토닥이며
눈물을 훔치시는
형의 누님과,

촛불에 연신
향을 살라 꽂으며
젖은 눈이 매번
천장을 배회하며
큰 눈 껌벅거리는
형의 찐벗
동진형과,

어렵게 어렵게
부음한 끝에
반신반의 하며
달려 와주신
형을 사랑한
저 사람들과,

형으로하여금
마련한
마지막 술상 앞에
불과 한 달 이전
이런저런 추억에
슬픔과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차츰 뒤범벅이
되어가는 빈소의
이 한 마당을?

이제
남은 이들의
슬픔과 아픔은
제각각 스스로의
감당 할 몫일 테니,

부디
이승에서의
사소한 인연에
아픔 품지 마시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벼운 영혼으로
훨훨 귀천길 가셔
맑고 고운 영혼으로
극락왕생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발원합니다.


2022년 5월 20일
(서울시립 동부병원
장례식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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