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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대청봉 산행

58년산

유통기한

만료시점

성능시험에서,

아슬아슬

위태위태

그 한계치를

경험하다.

 

25일 03:00시

별마저 잠든 밤,

오색 등산로(남설악)

개장시간에

밤새 기다림 끝,

새벽을 깨우는

냉찬 바람 속으로

시험을 감행한지

4시간 10분여,

 

도중중단의

위기 앞에

자신을 다그치며

어르고 달래기를

거듭거듭,

완전방전 일보직전

시동정지 상황

직면으로부터

어쩌면 행운이었던지,

밝아오는 여명에

새 하루의

힘을 얻고서야,

 

마침내

신비스런

파란 하늘과 맞닿은

설악산신령님의 성역

대청봉 정상에

우뚝 올라서,

 

신령님의 영역을

쉬 허락지

않을 것처럼

칼춤을춰대는

거센 바람 앞에,

 

설악의 기품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대청봉의 기상과

정기를 한껏 품어

숙연한 마음으로

첫 발원을 올리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서로 함께한

모든 이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건강과 평안

사랑과 행복을

축원하고,

 

산벗 네 벗님 간

두터운 우정 나눔으로

설악산 대청봉의

이 찬란한 아침을

선물 받게 되었음에

깊이 감사하고,

 

이 하늘과

저 아래 땅에서 이룬

모든 인연과 사랑에

감사하고,

 

나와 그들과 우리가

함께 나누고 누릴

내일이 있다는 사실에

또한 감사하며,

 

밤새 쌓인 피로와

조금 전 새벽녘

힘들었던 순간과,

예순셋 삶으로부터

끈적하게 들러붙은

잡 부스러기들을

탈탈 털어내

대청봉 표지석 아래

깊이 묻고,

설악의 신성한 기운과

대청봉의 찬란한

이 아침의 정기를

듬뿍 받아

새 기운 새 에너지로

가득 충전한다.

 

 

 

집 나서(19:45)

양평(원덕)으로

기찻길 달린지

두 시간,(21:50)

별빛을 따라

오색을 향해

밤길달린지

두 시간여,(00:15)

김총무 애마(개인택시)에

쪽잠을 청한지

두 시간 반여 끝,(02:50)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어마무시한 바람과

짙은 새벽어둠 속을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한 채,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는

등산로를 더듬어

마치

파도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

모퉁이 굽이마다

줄지어 반짝이는

랜턴불빛을 쫓아서

시운전에 박차를 가한지

한 시간여,

험준한 급경사지(깔딱고개)가

어둠 속 절벽처럼

눈앞을 가로막고

끝도 없는 계단과

숨 고를 새 없이

계속되는 가파른

바윗길 앞에서

마침내 엔진 작동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한다.

 

계단을 박차고 위로

밀어 올려야할 발의

종아리 근육이

자꾸만 오그라지며

근육경련이 일어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근육경직과 함께

통증이 점점

가중되는 고통으로,

예정시간을 자꾸만

지연시키는 상황에 봉착

셋 벗님들께 민폐가

우려됨에 도중하차를

잠시 고민 해보지만,

앞,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자주자주 쉬어서

근육 이완을 유도

지켜봐주는 벗님들의

애정 어린 성원을

저버릴 수 없어

다시 일어나

엉금엉금 한발두발

앞으로 또 앞으로

걸음을 내밀어보지만,

 

자꾸만 주저앉히는

근육경련과

잠시도 멈추지 않는

허벅지 통증으로

58년산 엔진이

설악산 대청봉

8부 능선쯤에서

그 한계를 맞는가 싶을

아찔한 순간,

 

사방이

스르르 어둠을 벗으며

해오름을 예고하듯

동녘을 아우르는

찬란한 서광이

잠시 멎는가 싶더니,

마침내 불쑥

벌겋게 타오르는 해를

쑤욱 밀어 올리고,

동해바다 수면에

금빛 주단을 펼쳐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며

가슴 벅찬 순간의

일출을 연출한다.

(06:40)

아~

얼마나 기대하고

염원했던 저 태양인가?

설악의

저 태양을 보며

성스러운 기운을

얻고자한 열망으로

밤새 안간힘써

대청봉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오름을

반복하지 않았든가?

 

벅찬 기쁨과 함께

새로운 또 하루의

새 에너지를 얻어,

58년산 엔진에

재가동을 시도하여

마침내

가파른 경사구간을

모두 벗어나

정상 가까이 완만한

평지대에 이르러서야

다리 근육경직으로부터

다소 좀 안정을 회복하며

비로소

설악산 대청봉 정상

성지에 그 족적을 올린다.

(07:10)

 

하늘은 가히

이 가을이 초 절정에

도달해있음을

여실히 증명해보이고,

속초를 중심

고성과 양양을

배수진으로

어느 한구석

막힘없이 우뚝 솟은

대청봉의 조망으로 부터

좀처럼 물러날

생각을 못하는데,

가차 없이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산신령님의

성역으로부터

어서 물러나라는 듯,

인증샷 하려는

호들갑스런 중생들을

금방이라도

날려버릴 것처럼

살벌한 칼춤을 춰댄다.

 

더 견디지를 못하고

급히

대청봉 정상을 물러나

퇴로를 찾아서

새벽 내내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그 흔적들을 확인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젠 그나마

홀가분한 기분으로

조심조심 엔진에 속도를

높여가다가

다소 좀 바람 드문

한적한 곳에 이르러서야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각자 준비해온

먹거리를 꺼내 펼쳐

허기와 피로를 달래며,

오늘아침의 이 영광에

모두가 고무된 채

서로를 마주보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유쾌히 식사를 마치고

이동시간 단축 편의상

한계령으로의 하산 계획을

원점회기로 변경하여

오던 길로 하산을 서둔다.

(08:00)

급경사 계단과

아찔한 바윗길 내리막을

아슬아슬 엉거주춤

기우뚱기우뚱 거리며,

밤이었기 망정이지

이 험한 길을

날 밝은 대낮에

눈 빤히 뜨고

적나라하게 바라보며

올라오려고 했더라면,

아마도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중하차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나의 넋두리에

세 벗님 또한

격히 공감하며

서로들

여유 있는 농담으로

밝게 소리 내어 웃는다.

 

그도 잠시

소강상태였던

다리(허벅지) 근육이

다시 경련을 일으키며

통증과 경직이 수반된다.

나뿐만이 아닌

58년산 네 엔진 중

엔진 세 개가 다

유사한 한계에

직면하다보니,

서로 미안할 필요 없이

동병상련 이심전심으로

쉬었다 가기를 거듭하면서도

밤중이라 놓쳤던

만추의 절경을

이제 겨우 발견해

가까이 바라보며,

어둠이 사라진

고품격 설악의 품에서

느긋하게

만추를 감상하는

여유와 행복을 누린다.

 

아래로 점점 내려올수록

핏빛 단풍에 걸음을 멈추고

탄성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들 먼저 쉬어가자

다리근육통증을 호소하곤

주저앉은 채,

자신의 다리를 매만져가며

아래로 더 아래로

진격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파도구간을 오르내린다.

이제 하산 끝 지점

어제 어둠의 그 시작지점에

이르러 있음을 공감하고

앞서가던 희창군의

유도에 따라 모두

계곡을 건너기 위한

목교 앞에서

다리 밑 물가로 내려가,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구고 머리까지

물을 끼얹어 세수를 하고나니,

그야말로 지난 새벽부터

쌓이고 쌓인

피로와 긴장감이

물에 씻기듯이 사라진다.

(09:20)

오이를 계곡물에 씻어

앞앞이 던져주는

희창군의 배려에

우걱우걱 갈증을 풀고,

바위틈새 숨어숨어

어렵사리 끓여낸

김총무의 봉지커피 한잔에

노독을 삭이며,

 

58년산 유동기한

만료시점에 임박

설악산 대청봉

정상을 탈환하고,

무사히 원점회기

설악수를 보충한 후

그 성능시험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11:30)

2020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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