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장에
엑스레이 그만 찍고
아빠 따라서 산에나 갈텨?”
밖은 워낙 뜨거운 땡볕이라서
빈축 맞을 각오로,
은근슬쩍 던진 한마디에
전혀 뜻밖에
딸아이가 호응을 하며,
사위를 불러일으키고
아들까지 거실로 불러내
망설일 틈도 없이
동참을 이끌어낸다.
이거 웬걸!!?~
이게 웬 떡!!?~
헐레벌떡 일어나
배낭 챙겨 냉장고 문 열고,
오가피엑기스에
냉수 섞어 채우랴~
빈 페트병 찾아
냉수 눌러 담으랴~,
참외 두 개까지
랩에 싸 챙겨 담고,
배낭을 다시 뒤져
팔 토시를 꺼내
사위 팔뚝에,
정글 모자를 찾아
딸아이 머리에 씌우고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불볕 가득한
거리로 나선다.
성큼성큼 앞서나가
마트를 휘젓고 다니다
양갱과 음료를 추가 보충 후,
바깥출입을 자제하라는
폭염경보를
애써 외면한 채,
딸 사위를 앞세우고
듬직한 아들 호위를 받음서
의기양양 으스대며
양어깨를 들썩들썩,
지하철 한켠을
내 집 안마당처럼
은근스레 으름장을 치며
경계 벽을 유지하다,
스르르 열리는
문밖으로 잽싸게 빠져나와
앞서 출로를 확보하며
용마산역 터널 속을 탈출,
눈부시게 찬란한 햇빛
숨이 헉 막히는 열기 속
세상 밖 한여름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낸
용마공원 인공 폭포수가
숨 막히는 한여름 열기에
흰 거품을 토해내고,
오후 한낮
쨍쨍한 태양이
진초록 숲에
열기를 쏟아낸다.
늘 혼자서 오고감을
측은스레 품어주던 산
오늘은 마치 의외라는 듯
넓은 품이 더 활짝 열렸다.
줄줄이 앞선 나의 군사에
한여름 단골손님
첫 환영 가를 뽑고,
8부 능선
전망대 상공에
고추잠자리도
처녀비행을 시작한다.
저만치 외로이 홀로 핀
나리꽃 한 송이가
한여름 열기에 휘어진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부러운 듯 살포시
예쁜 미소를 머금는다.
사뿐사뿐 앞서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비지땀을 훔쳐감서
모아서 찍고
짝 지워서 찍음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을 나눠 마셔가며
아이들과 격 없이
함께 걷는 길,
짤막하게 오가는
한 두 마디 대화 속에
두터운 사랑
깊은 정 오가고,
환갑을 막 지난
노객의 가슴이
땀과 만열로
뭉클 범벅이다.
용마산을 넘고
아차산 4보루를 지나
간간이 바람 오가는
시원스런 소나무 그늘아래,
배낭 속 모두를 털어내
갈증과 허기를 채우며
이러저러한 사소한 이야기에
열린 마음 넓은 가슴으로
훈훈한 가족 사랑이
새록새록 깊어간다.
그 옛날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던
어느 새해 새벽,
아빠께서 깨워
새 햇님께 소원
빌러 가자던,
간절한 열망과
애절한 축원으로
용마산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던,
그 때 그 산행이
생각이 난다며
딸아이가 슬프게 웃는다.
왜 어찌 그 힘들었던,
투병의 시간을
금방 쉬
잊을 수 있으랴?
딸아이 몰래 숨어 울던
그 애잔하고 애처로웠던
눈물의 시간을!!~
세월 지난 모든 것은 다
아름다운 추억이라 하였으니,
딸아이의 슬픈 미소에
포근하고 넉넉한
부정의 미소로 대신하며,
사위에게도
그 추억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시간들을 되돌려
어렴풋이나마
기억을 재생시켜준다.
도심과 산과 초록 숲에
갈증을 가중시키며
화풀이를 해 대듯
이마를 지져대던 해가
어느덧 슬그머니
중천을 저만치 비켜서고,
우리도 훈훈한 마음으로
다소 더위를 모면한터라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짚어간다.
대성암 계단 앞에
합장 삼배하고
절 마당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동안 무뎌진 근력에
기를 몰아넣는 중,
절 마당 계단을 내려와
자꾸만 배를 매만지며
뒤처져있는 사위 표정이
예사치 않음을 감지하고
서둘러 운동을 중단,
체력장을 물러나와
팔각정을 지나
공중화장실을 거친 후,
맛들려져 간혹 찾는
생고기김치찌개 집
원탁을 차지하고 앉아
뿌듯하고 흐뭇한
아비로서의 마음을 전하며,
산행에 따라나서 준
아이들한테 감사하고
모두 함께
오늘을 누릴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하니,
내 앞에 얼굴 마주한
내 아이들 존재감만으로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아니하고
비록 뱃속은 꼬르륵 울지라도
뿌듯한 행복감에
허기진 줄 모른다.
다들 생고기 찌개 맛에
금방 빠져들어
공기 밥까지 꾹꾹 말아
맛있게 상을 비우고
포만감으로 식당을 나오며
여기까지가
오늘 산행의 종료임을 알리자
아이들이 환영의 박수로
아빠의 산행 길잡이에
감사와 만족감으로 화답한다.
힘들었을 아이들을
대중교통으로 귀가케 하고
언제나 정해진
나만의 도보 행로를 찾아
도심 샛골목을
바람처럼 가볍게 누비며
노곤하기보다는
가뿐 사뿐 유쾌 상쾌
통쾌한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어감서
내리는 어둠을 벗 삼아
차량 불빛 달음질치는
도심 거리를 건너지르며
곱고 예쁜 하루를
다소곳이 접어
추억의 책갈피에
표시 나게 갈무리한다.
2018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