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일(토)~2일(일)
긴긴 여름 끝
갑작스런 가을 출현에,
한여름 열기를 달래고자 했던
세 이웃 간 소망이,
반 쯤 토막이 나버린 채
그마저도 주저주저한 끝에,
세 부부 중 두 부부만이
떠나는 반감 된 기대 속 캠핑,
각각 따로 출발을 약속하고
포천을 지나 철원으로 가는 길목,
인적 드문 삼팔선 휴게소에서
멋쩍은 도킹을 이룬 후,
간단한 아침 식사 끝
앞서 가는 대현 네의 차
뒤꽁무니를 줄곧 따라서,
가을 들녘을 지나 산을 넘고
십 수 분을 더 달린 끝에,
지장산 계곡 상류 끝 지점
텐트 자리가 확보된 공간에,
안전하게 주차를 마치고
계획했던 지장봉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지독한 한여름 끝
한적한 지장산마루
민감한 단풍나무엔
이미 가을이 서렸다.
설은 가을 산 9부 능선에
은근한 취기가 돌고,
만만찮은 급경사 능선에
굵은 땀방울을 훔쳐내며
행여나 어디 버섯이래도 있을까
부지런스럽게 눈을 번뜩여,
나무 밑과 낙엽 속을 눈여겨보며
차오른 가픈 숨을 길게 토해낸다.
지장산 산신님께서
이내 사정을 아셨는지
마치 보물찾기에 우릴 불러
선물이라도 내려 주시듯이,
참나무 무르팍 밑과 등 뒤에
보물처럼 숨긴
노루궁뎅이버섯 두 송이를,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되는 먼발치에
동시 발견토록 점지해주시니,
두 부부의 단출한 산행에
또 하나의 신선한
기쁨과 추억이 된다.
877,2고지 지장산 정상에
두 부부의 추억을 쌓고
여름과 가을이 교차되는 계곡에
텐트를 구축하고 나니,
어둑어둑 지는 해가
텐트 속으로 숨어들고
지장산 계곡 얕은 수면 위로
두 부부의 밤이 새로이 열린다.
신선하고 신비로운
노루궁뎅이 버섯을
신선이 부럽잖은 듯
혀를 굴려 음미하고,
산에서 맛보는
우럭과 참도미 찜은
이슬이를 마냥 춤추게 하니,
타오르는 모닥불
해 저문 줄 모르고
오순도순 우리 이야기
밤 깊은 줄 모른다.
두 부부간 하루의 해가
지장산 계곡에 추억을 남기고
깊은 밤 짙은 어둠이
또 하루를 꿀꺽 삼킨다.
2일(일)
지장산 맑은 계곡으로부터
새로운 또 하루가 시작되고
텐트주변을 엄습한 연무가
비를 잔뜩 머금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열고
여유로운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텐트를 거둬
지장산 계곡을 물러나니,
하룻밤 새 저만치
가을이 성큼 간다.
대현아빠의 길라잡이에
오늘의 일정을 다 맡기고
고향 형님 딸 청첩마저
축의금 송금으로 대신한 채,
비둘기낭 폭포를 찾아
홀가분히 일상을 탈출
자연의 신비함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탄강 물줄기
어설픈 어부 놀이에
하느님 비 뿌려
점잖이 말리시니,
빈 어항 건져서
차에 싣고
비 피할 다리 밑을
찾아서 길 떠난다.
빗줄기 점점 굵고 거세니
아예 귀경 길로 방향을 잡아가며,
그러면서도 그 꿈을 접지 못한 채
교량과 교각을 지날 때마다,
차를 멈춰서 살피고 헤집다
마침내 발견한 최적의 다리 밑,
버너와 코펠과 라면과 물을 챙겨
후다닥 다리 밑에 한 살림을 차린다.
어느새 부글부글
한 냄비 물이 끓고,
라면 넣고 김치 넣고
찬밥 넣고 버섯 넣고,
보글보글 끓여가며
물 맞추고 간 맞추니,
이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라면국밥 레시피가 특제된다.
마음 통하는 사람과 함께
비 오는 날 다리 밑에서
라면국밥 끓여먹는
그 특별한 기분을,
그 오묘한 별미를,
어느 누군들 경험이나 해 봤을까?
그 진기하고 이색적인 맛을
꿈속에서라도 봐봤을까?
그 궁상맞은 분위기 속에서도
가식 없이 서로 웃고 즐기고
부족함마저 부담 없이
서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친구,
서로에게 그런 친구가 있음이
더없이 흐뭇하고 행복하다.
서로 가까이에 이웃 이루고 살면서
언제든 맘 내킬 때 서로 오가며,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는
서로의 가슴에 자리를 내어준
삶과 인생을 동반할 부부,
제1탄 도원 계곡에서 시작하여
제2탄 지장산 계곡으로 이어왔으니,
은근히 내년의 제3탄을 기약하면서
두 부부가 이어가는
서로의 우정에 감사하고,
서로의 삶에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지장산 계곡 캠핑의 순간순간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와 함께
느릿느릿 시간 속으로 뒷걸음질을 쳐가고,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가
금시 포천 시내를 벗어난다.
더 이상 함께 가기엔
방향이 서로 다름을 잘 알기에
멋지게 손 흔들어 작별인사를 대신하고
가을비 속을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삼아
느긋하고 여유롭게 광릉수목원 길로
방향을 튼다.
“광릉수목원 길로 드라이브 괜찮지?”
가을비에 다소 기분이 가라앉은 듯
그러나 싫지 않은 표정으로
“알아서 하시요!!~”
“지장산 바람으로 콧바람이 안 잦아드는가?”
이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웃어주는 아내를
힐끗 보고는 함께 웃으며, 느릿느릿 스치고
지나가는 수목원길 풍경에 상쾌함을 만끽한다.
차창 밖
촉촉이 비에 젖은 수목원길 숲이,
서서히 여름옷을 벗고
가을 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