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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작은 여유 소박한 행복

 

 

 

 

맘먹고 가족끼리 외출이라도 한번 해 볼라치면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였던

딸아이가, 웬일로 며칠 전부터 8월 15일을 지정하며

자진해서 가족 나들일 제안해 놓고는 아무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곤 했었다. 그럴 때면 석연찮아 미심쩍어 하면서도

행여나 하는 기대를 품어 보기도 했었건만,

막상 그 날이 되고 보니 이른 새벽부터 제법 굵은 빗방울이

어둠이 묻은 창문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나들일랑 물 건너가는 소리처럼 빗소리가 더욱 더 또렷해진다.

몇 번이고 현관문을 열고 밖을 살펴 가며,

처음엔 수진 네와 피서를 다녀왔던 연인산 계곡을 한 번 더 다녀올까?

아니면 먹을 것을 준비해 포천 친구네 “산 따라 물 따라”를 찾아가 볼까?

딸아이의 대견(?)한 제안을 저버릴 수만은 없으니

그냥저냥 드라이브 삼아 어디론지 향하다 적당한 곳 골라

점심이나 하고 들어올까를 아내와 둘이서 고민 고민을 하고 있는데

평상시 쉬는 날이면 정오가 지나서야

부시시한 눈 부비며 “나 배고파!!~”하면서 내려오던 딸아이가

믿기지 않게 9시30분에 계단을 내려와 우리 방으로 들어온다.

저 역시도 날씨 파악을 했을 것인지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내가 “어제 주현인 몇 시에 들어오더냐?” 라고 묻자

“별로 늦게 들어온 것 같진 않던데!!~”라며

우리 둘 눈치를 살피고 섰다.

일단 아들을 깨워야겠다 싶어 윗 층에 대고 아들을 부른다.

아들 역시 부산하게 계단을 내려와 무슨 일이냐는 듯

우릴 번갈아 쳐다보며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아내가 재빨리 밥상을 챙기며 일단 아침을 먹고 생각을 하자는데

무언의 동의를 하며, TV를 켜 놓고 숟가락질을 하는 둥 마는 둥

시선은 화면에 고정을 한 채 신경을 곤두세운다.

서해안을 중심으로 경기북부 까지 호의 주의보가 발령되고

국지성 집중 호우를 조심하라는 자막이 꼬리를 물고 계속 된다.

딸아이는 아직 기대를 꺾지 못하고

아들 녀석은 이내 감을 잡은 듯한데

아내는 일단 불가 쪽으로 맘이 기운 듯하다.

“비가 웬만해지면 양평 댐에 물 구경이나 하러 가 보자”고

아이들 기대를 꺾지 않는 선에서 얼버무리며 밥상을 물리는데

우려해야 될 만큼 굵은 빗줄기가 무섭게 내리 퍼 붓는다.

이내 아이들 스스로 포기를 한 듯 제 자리를 찾아

길게 누워 늘어지고 아내와 나도 거실 한켠에 자릴 잡고

여유 있게 휴식모드로 접어든다.

차라리 잘 됐지 뭘!!~ 하는 안도감으로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묘한 미소를 흘리며,

 

늘어지도록 실컷 한잠씩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비는 여전히 계속된다.

TV 채널만 이리저리 옮겨가며 아이들의 무료함은 점차 가중 되고

또 다시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상을 챙겨내야 하는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군것질 거리를 찾아내서 아이들과 한동안을 오물거리는데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한 가족의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과 함께 한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부정을

외면하고 있는 듯한 묘한 자책성 감정이 마음을 어지럽히며

나도 모르게 불쑥 “그냥 우리 어디든 나가보자!!~” “얼른들 준비해!!~

라는 말을 남기고 급히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아이들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고 아내 역시 웃음 반 근심반인 얼굴로 내 뒷모습을 살핀다.

그래!!~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저 두 아이들과 맘 편히 함께할

시간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서로한테 이러한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존재할 때

부모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그 의무와 몫을

다 하지 못하고 귀한 시간 소중한 순간을 외면해버린다면,

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한 가족으로서 서로에게 공감될 수

있는 가슴 흐뭇한 추억의 시간들을 언제 무슨 수로 남겨줄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힘과 함께 의욕이 넘쳐난다.

양치질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자 아이들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

차 앞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섰고 아내 역시

슬그머니 손 가방을 챙겨들고 내 뒤를 따른다.

작정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서서히 차를 움직인다.

천호대로를 곧장 달려 천호대교를 건너 올림픽 대로로 진입

미사리를 지날 때 까지 세찬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른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아이들과

옆 조수석에 자리를 차지한 아내가 불어난

한강의 황톳물줄기를 바라보며 놀라워하기도 하고

미사리를 지나 양평대교에 다다라서 차도에 고인 물을 가르며

차바퀴에 튀겨져 오른 물보라를 손가락질 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며

양평대교를 지나쳐 오른쪽 산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에 겁에 질린 듯 움찔하기도 한다.

물바다를 이루는 도로를 건너서 유명 맛 집 멋 집을 지나

여유를 즐기며 한 시간여를 달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이동하는 차량들이 사라지며 앞서가는 차량도 뒤 따르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폭우로 인해서 도로가 끊긴 건 아닐까 문득 불안한 생각에

주춤하며 잠시 속도를 늦추는데 곧 바로 앞에 도마삼거리 이정표가

구세주처럼 반기며 드문드문 거북이걸음 하는 차량 행렬이 보인다.

더 나가기가 내키지 않아 차량이 많이 가는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얼마 지나지 않으니 거대한 물줄기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경안천 광동교가 눈앞에 있다.

탁한 흙탕물이 넘칠 듯이 물바다를 이루고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천변 농경지 침수가 우려될 정도로

그 물길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거침없이 넘실댄다.

아내와 아이들도 차창을 열고 밖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출발 할 때 보다는 빗줄기가 훨씬 가늘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광동사거리에서 우회하여 후미진 곳에 차를 세우고

긴장도 풀 겸 생리적 현상도 해소할 겸

우산을 받쳐 들고 몇 걸음을 옮겨가자

빗물에 흠뻑 젖은 초록 머플러를 늘어뜨린 겨드랑이 사이에

갈색 수염을 너풀거리며 탐진 옥수수가 통통한 관능미를 자랑하듯

비스듬히 내다보고, 그 아래 땅바닥엔 맑은 옥구슬을 입에 문

고구마 순이 밭두렁을 타고 앉았다.

아들 녀석은 바로 옆 우산 속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차 안에선 두 여자가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한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수 분여를 달렸을까?!

도로변 바로 옆에 커다란 주차장이 나타나며

입구엔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이란 안내간판이 얼굴을 내밀고 섰다.

뒷좌석에서 도란거리던 아이들이 동시에 볼거리를 만났다는 듯

 

“저기다!!~” “아빠!! 우리 저기서 쉬었다 가요!!~”

 

평상시 같았으면 미어터지고도 남았을 주차장이 텅텅 빈 채

겨우 몇 대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우산을 쓴 모녀, 부부인 듯한 사람들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주차장 한 칸을 마음대로 골라잡아 주차를 마치고

각자 우산들을 챙겨 쓰고 나와 산책길에 나선다.

연꽃 식재 지를 지나 광대한 습지 이동로를 따라

갈대가 우거진 사이사이 군데군데 운치 있게 목재로

이동로 내지는 진입로를 설치해 놓은 풍경이 자연스럽고

걷기에 지루하지 않을 만큼 오밀조밀한 갈대 숲길에

새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마련한 지형지물이 인상적이다.

추적추적 여름을 보내는 빗줄기 속을

우리 네 가족이 나란히 우산을 쓰고 오붓이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멋스런 갈대밭 오솔길을 지날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족이 뭐 길래 지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붙들어

다함께 한 가족임을 증명이라도 하고픈 듯

서로를 이끌어 한 컷을 부탁하고,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그 한 순간의 장면에 새겨

남기려는 듯 나란히 세워 찍고 또 찍어가며

숨김없이 서로 오가는 가식 없는 가족애에 참으로 흐뭇함을 만끽한다.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 가족만의 행복한 여유스러움 이랄까!!??~

2012년 8월 15일 광복절, 장대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던 날!!~

예기치 못했던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에서

소중한 가족 사랑을 체험 하고 가슴 뭉클한 행복을

건져가는 것 같아 더 없이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그렇게 그 아름다운 갈대 숲 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되었을까?!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주차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보니 오후 4시가 임박,

“배 안고파?”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묻는데

다들 배고픈 기색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할까? 돌아가다가 어디라도 들러 밥을 먹고 들어갈까?”

“아니면 가락시장에 들러 시장을 봐가지고 집으로 갈까?”

 

잠깐 생각하던 아내가

 

저녁 식사 준비 겸 가락시장에 들러 찬거리를 봐가자는 말에

모두 동감하고 서둘러 귀경길을 재촉한다.

다들 즐겁고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고 아이들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한결 부드럽고 흥겹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고인 물 구간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조심조심 달린 끝에 양평대교에 이르자

물 구경 나온 사람들로 인해 주변이 혼잡스럽다.

곳곳에 경찰님들이 배치되어 차량 흐름을 돕고,

강변 안전대에 매달려 댐 수문 쪽을 바라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등을 구부린 채 긴 인간 띠를 이루고 있다.

정체 구간을 겨우 빠져나와 곧장 가락시장으로 내달리며

언제부터 말을 꺼내놨던 장어를 떠 올리며,

 

“뭘 사지?” 라는 말에

아들 녀석이 일고의 망서림 없이

 

“짱어요!!~”

 

딸아이도 흔쾌히 동의를 하고,

아내는 별 내색이 없는 걸로 보아 썩 좋아하진 않는다는 의미.

 

“그럼 짱어에 낚지 추가!!~”

아들은 덩달아 신이 나고

아내역시 그럭저럭 동감을 하는 듯~

오늘 만큼은 아들 녀석이 좋다는 건 뭐든 흔쾌히

다 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자전거 전국 일주 후 아직은 노독이 다 풀리지 않은 상태일 것 이고

취업으로 인한 긴장과 걱정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을 것이리라.

오늘의 이 가족 나들이로 인하여 가슴에 그나마

가족애와 행복으로 다소 여유로울 때

포근하고 넉넉한 부정으로 내 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아비로서의 내 몫을 다 해 보리라.

직장에서 힘든 상황을 겨우 극복 해 내고

제 자리를 꿋꿋이 찾아가는 딸아이한테도 그러하고,

부족한 남편 성심으로 내조하며

가족 위함에 아낌없이 헌신해온 내 아내께도 그러하리라.

 

가락시장 수산물 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인들의 호객 질을 애써 외면하며 어렵잖게 두 군데를 거치며

계획했던 수산물을 쉽게 구입한다.

내 가족을 위해서 먹거리를 챙기는 일에

아까울 게 무엇이 있겠으며 설사 아낀다 한들 그것을

뒀다 무엇에 쓰리??!!~

다들 이런 때 돈 쓰자고 개고생 하며 돈 버는 것 아니겠는가?

내 지갑에 들어있는 전 재산을 털고, 아내가 지니고 있던

손가방을 홀라당 다 털어 내서------------------

비록 두 지갑을 다 털고도 초라하기 만한 먹거리지만

마음만은 풍성하고 흡족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어느 개그코너에서처럼

몸은 돼지 뚱뗑이 일지라도 마음만은 홀쭉타던가 뭐라던가?

하하하!!~

 

즐거움이 배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다정다감한 모습들로

아내가 바삐 음식을 챙겨내는 동안

야채를 다듬고 마늘을 저미며

저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기들 일처럼 부지런을 떨어댄다.

 

불판엔 금방 행복이 지글거리고

아들과 내 술잔엔 찐한 가족 사랑으로 넘실거리며

양 옆 딸아이와 아내 얼굴엔

싱글벙글 환한 웃음이 그칠 줄 모른다.

 

2012년 광복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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