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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내 아버지의 기일

 
 
아부지의 기일 (10월 8일)
 
분주하고 긴장된 추석 대명절의 들뜬 분위기를 한발짝 비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소 피곤하고 가라앉은 듯한 명절 후유증을 벗어나려 애쓰며 평상을 찾아가는 윤기없는 시점에 난 느긋하고 편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길을 찾아 나선다. 추석 6일 이후가 내 아버님의 기일인지라 명절 사람들 많을때 함께 왔다가 가지 그러느냐시는 어머님 말씀에 "예~ 그럴께요!!~" 하는 대답을 습관처럼 드리면서도 이때가 되면 다시 추석 귀성길을 포기하고 기꺼이 아버님 기일을 선택해 버리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음은 아니지만 복잡하고 분주함에 쉽게 적응 못하는 성격 탓과 아버님 제사상에 머리 조아리며 생전에 못다 받은 아버지 사랑에 푸념반 어리광 반으로 보상심리 내지는 빚쟁이 같은 심정으로 저승에서 지켜보고 계실 내 아버님께 소원을 빌고 소망하고 부탁하고 나면 못 다 주고가신 죄가 있으시니 왠지 꼭 들어 주실것만 같은 착각속에 나름 정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추석명절을 포기하고 아버님의 기일날을 택해서 본가를 향한다. 어머님이 계시고 누님께서 참석을 하시지만 형님,형수님께서 좀은 외롭고 적적하실것 같은 생각 또한 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어제 마무리를 못다한 일에 거래처 고객께 사정을 전하고 다음주 월요일 마무리 하겠노라 양해를 구한 후 아내와 함께 사무실 업무와 집 정리를 마치고 남부터미널로 향한다.(10:20) 공공교통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아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느긋함과 편안함을 공유하기 위해 애마를 쉬게하고 등산 배낭에 옷가지와 필수품을 챙겨 어깨에 메고 고향길을 나선다. 5호선 전철에 올라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3호선으로 환승 후 이내 곧 남부터미널 역에 이르자 스르르 열리는 전철문을 빠져나와 넉넉히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있게 개찰구를 나와 매표소를 향한다. 깜짝 인터넷 예약 사실을 생각해 내고 티켓 발매기를 찾아 승차권을 뽑고나니 아직도 시간은 여유롭다. 아내와 팔짱을 끼고 이곳 저곳을 넘보고 다니다 도넛츠 가게에 이르러 아내를 찔벅거려 눈치를 보내자 아내도 좋겠다는듯 환한 미소로 OK싸인을 한다. 두개를 따로따로 이쁘게 포장해달라 청하고 정환이가 이따금씩 챙겨다 주는 도넛츠 맛에 길들여진 터라 맛있는 품목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것이 더 맛난디!!~"하며 아내와 웃는다. 점원 아가씨가 건네주는 이쁘게 포장된 도넛츠 케이스를 받아들고 대합실 쪽으로 걷다보니 구례,하동가는 승강장 문 사이로 버스가 보이고 이미 몇몇 승객은 승차를 완료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라 자릴 잡고나자 명절 끝이라선지 좌석이 텅텅 빈 채로 티켓확인을 마치는가 싶더니 안내 방송과 함께 마침내 버스가 출발한다(11:15).
 
좌,우회전을 거듭한 끝에 도심을 벗어나자 곧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금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나간다. 시간과 속력이 더해 질수록 푸르름이 덜 가신 황금 들녘은 깊디깊은 가을 속으로 줄달음을 쳐가고 차창을 스치고 가는 가을 정경은 우리 부부의 눈과 가슴속을 휘젓다 빠르게  멀어져 간다. 차창을 스쳐가는 가을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 의자를 뒤로 젖혀 머리를 기댄 후 아내에게도 흉내를 내 보이고 살며시 눈을 감는다. 두시간여를 달린 후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휴식과 함께 감자와 어묵으로 빈 속을 대충 채우고 장수를 지나 남원에 이르기 까지 설익은 가을풍경에 짬짬이 아내를 찔벅거려 차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이 기사양반도 가을 정취에 맘을 뺏겨서였는지 세시간 반이면 도착하던 고향길을 네시간을 꽉 채우고도 수분여를 늦게 구례 터미널에 도착한다.(15:20) 짐을 챙겨 내리자 마자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5분전에 광의행 버스는 떠나고 다음 차 시간이 15:50분이다. 다음차를 기다릴까 택시를 탈까? 아니면 황금들녘을 가로질러 가을을 만끽하며 걸어서 가보면 어떨까를 망서리다 결국 다음차를 기다리기로 하고 대합실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한참만에 들어오는 광의행 버스에 올라 본가를 향한다. 가을 추수가 목전이라선지 대합실도 한산하고 버스 승객도 몇몇 뿐이고, 지천리를 통과한 버스는 방광리를 지나 천은사 매표소를 통과하여 절 앞 주차장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오던길을 달린다. 어릴적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내 또래 대부분의 친구 아이들이 세,넷씩 어울려 힘에 부치는 리어카를 서로서로 짝지어 밀고 끌어서 아버지,어머니,형님분 들의 나무 마중을 여기까지 올라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여기 어디쯤 언덕길에서 쉬어가며 한숨 돌리다 돌멩이를 주워 나무 꼭대기를 향해 던져 대며 그 익지도 않은 밤,도토리를 따 모으던 추억을 아내한테 들려주며 입가에 미소가 연신 떠나지 않는다. 그때 그 성만이,주영이,인택이---------등등의 친구들 모습이 꿈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사랑재를 넘어 뒷뚱에 이르자 벌써 군데군데 가을 걷이가 시작되고 이미 추수가 끝난 논은 황금들녘에 땜통 자국처럼 그 자죽이 선명하다. 이제 곧 우리 부모님 형님 형수님 피곤한 몸 간신히 가눠가시며 추수하시기에 밤 새는 줄 모르시리라 생각하니 마음은 바빠지고 심란스럽기만 하다. 어느새 버스는 공북 까끄막을 미끄러져 내려 하대,연파리를 거쳐 우리동네 당산 앞에 멈춰서자 마침내 서울을 떠난지 다섯시간 50여분 만에 본가에 도착한다. 어머니께 인사 올리고 누님을 뵙고 형수님께 안부 여쭙고,옷을 갈아입고 나서 앉아있을 틈도 없이 곧 일거리를 찾아나선다. 이미 제사 음식은 형수님께서 다 준비를 하셨다고 하니 아내는 미안한 생각에 몸둘바를 모른다. 벽걸이 선풍기에 먼지가 자욱하여 벽걸이에서 분리하여 선풍기를 밖으로 들고나와 먼지를 털어내고 날개를 풀어 물걸레로 닦아서 다시 조립한 후 벽에 걸고나니 아내가 주방에서 볼멘소리로 불러대며 씽크대 온냉수 꼭지를 좀 봐달라 아우성이다. 형수님 까지 합세를 하시는가 싶더니 언젠가 형님께서 수도꼭지를 사다 놓으셨던거 같다시며 형님을 찾으신다. 밖에 나가셨던 형님께서 들어오시다 금방 알아 차리시고 창고로 가시더니 수도꼭지를 찾아다 주시며 밖을 향해 "들어와"!!~라시며 누군가를 부르신다. 수도꼭지를 받아들고 고개를 돌려서 보니 빙그레 웃으며 들어오는 도현이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이 반가운 사람!!" 참으로 얼마만이던가?! 어릴적 유난히 맘이 통하여 함께 만화책을 빌려다 보며 청소년기를 거의 붙어살다 싶이했던 반가운 친구!! 맞잡은 손을 힘껏 흔들어 대며 자릴잡고 앉는다. 그러자 형님께서 도현이랑 둘이서 천은사 골짝을 뒤져 그 귀하고 금값 보다도 더 비싸다는 송이버섯을 캐왔노라며 엄지손가락 만한 송이버섯 두송이를 상에 올려 놓으시고 형수님을 향해 술을 내 놓으라신다. 어머님과 누님을 상 앞으로 부르시고 송이를 잘게 찢어 앞앞이 나누시며 형수님께서 내놓으신 술을 잔에 가득채워 부어 어머님께 한잔 나도 한 잔 도현이도 한 잔 형님께도 한 잔, 목줄을 타고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향긋한 솔향과 매실향에 고향 내음이 새록새록하고 신선하고 풋풋한 송이버섯 맛에 정신은 맑고 정결함을 느낀다. 아내와 형수님과 누님 께서도 귀한 맛 본다시며 오물오물 버섯 맛을 음미하시는 동안 살며시 일어나 주방으로 가며 형님께 연장을 묻고 수도 계량기를 잠궈주시라 청하니 형님 또한 바삐 몸을 빼시며 밖으로 나가신다.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동안 성중이와 일기가 합석을 하고 찬수는 팔목만한 굵기의 송이버섯을 가지고 와서 우릴 놀라고 감동케 하며 성태 아재,아지매 까지 오셔서 반가움을 더해 주신다. 담소가 오가며 술잔이 거듭되는 사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체인이 벗겨져 방치된 자전거를 고쳐타고 급히 처가를 향해간다. 대문 앞에 이르자니 아버님께서 나오시며 인사를 여쭙기 무섭게 콩을 거두러 간다시며 급히 밖으로 나가신다.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캐리어를 낚아 채 끌고 아버님 뒤를 쫓아가다 보니 점빵앞에 이르자 장모님께서 콩다발을 옮기고 계시며 반가히 맞아주신다. 인사를 드린둥 마는둥 마을 진입로 인도에 건조망을 길게 깔고 그 위에 드문드문 콩다발을 늘어 놓으시고 계시는 당산나무 밑 집 할머니를 도와 건조 자리를 확보한 후 다시 처가로 들어온다. 넓다란 마당이 온통 콩다발 더미로 그득하다. 불편하신 몸으로 어찌 저리 큰 일을 하셨을까? 안타깝고 죄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하다. 대충 마당 정리를 마치고 오늘도 힘겨우셨을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위해 본가로 향한다.
 
짙은 어둠이 정겨운 구석구석을 차별없이 포용하고 왼 종일 설레임 가득하던 내 가슴에도 이내 밤 그림자 짙어가니 결전을 목전에 둔 전장처럼 농번기에 임박한 숨막히는 고향의 가을밤이 깊은 정적과 고요속으로 스멀스멀 빠져든다. 차별없는 자혜로운 포용에 답례라도 하려는 것일까?! 초롱초롱 빛나는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에 흩어져 제각각의 사연을 말하는듯 깜박이고 나도 몰래 어느덧 하나둘 별빛을 쫓아 헤아리며 별 하나 추억하나, 별 둘 그리움 둘------------------------- 어느새 난 소시쩍 악동이 되어 고향하늘 별빛속을 풍선처럼 떠다닌다. 이 편안함 이 포근함 이 흐뭇함이 곧 고향 내 고향이리라.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윗목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양쪽으로 촛불을 밝힌 후 신위를 가운데 모시고 제기에 정성껏 마련한 제수를 올려 진설을 시작한다.어동육서,두동미서,좌포우혜,홍동백서라 하지않던가!!~ 향을피워 제사를 고하고 술을 따라 모사기에 나눠 부어 정결함을 보이고, 절을 올린 후 다시 술을 가득 채워 향불에 예하고 상에 올려드린 후 절을 두번 올린다. 정성을 다하여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기를 청하고, 내 어머니의 만수무강과, 형님 가내의 건강과 평안을, 누님을 비롯한 누님가에 건강과 행복을, 동생네에 사업 번창과 행운을 축원하며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시는 것처럼 떼를쓰듯 애원하듯ㅡ 생전에 못다주고가신 아버지 사랑, 아버지 정, 아버지 몫을 이제라도 갚아주실것을 요청하는 간절한 맘으로 절을 올린다. 허허허 하고 웃으시며 "알았다 이놈!!~" 알았으니 그만 억지부리고 어여 일어나 힘껏 살아야제!!??~" 하실것만 같은 나만의 착각!!~ 그 착각에서 오는 나만의 안도감과 편안함에 스스로의 위안과 든든함이 생겨나 좋으니 어찌 오늘을 추석 대명절에 견주리------------------현주에 이어 누님 형수님 아내까지 술잔을 올리고 메밥과 갱을 올린 후 방문을 닫고 거실로 모두 나와 옛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를 추억하는 옛 이야길 나누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갱과 물을 바꿔 올리고 물밥을 한 후 다 함께 절을 올리고 상을 거둔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하며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이 창을 넘고 짙은 어둠을 깨우다 이내 그 속으로 사라져 간다.
 
 
종민형 내외와의 특별한 추억 (10월 9일)
 
서울에서의 일상으로 치자면 이른 새벽시간 06:30
주방으로 부터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모든 느낌과 공기 사소한것 하나부터가 모두 새롭고 흥미롭다. 아내도 벌써부터 부엌일을 거둘고 어머니는 벌써 웃집을 다녀오신지 오래전, 형님께선 이미 논 머리를 돌아오시고 누님 역시 돌아가실 채비를 서둘고 계신다. 거실 문을 열고 나서자 황금들녘이 눈앞에 펼쳐지고 상쾌한 가을 내음이 폐심장을 흥분시킨다.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복송밭길을 걸으며 아침 운동을 시작한다. 속도를 내 가며 뚝방길을 내 달려서 방천 끝에 이르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들판엔 풍성함이 물씬하고 헐떡거린 내 가슴엔 세월을 털고 고개 내민 추억과 그리움이 범벅이다. 오던길을 되돌아서 다시 달리기를 이십여분 집마당에 도착하자 이미 아침식사가 시작됐다. 샤워를 마치고 서둘러 아침상을 물린 후 누님을 읍 터미널에 모셔 드리고 아내와 함께 내일 돌아갈 버스표를 예매해서 지갑에 넣고나서, 추석날 통화중에 "이번엔 꼭 좀 얼굴 볼수 있도록 시간 충분히 갖고 내려오라"는 종민형의 분부를 받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드려본다. 대번 어딘가를 물으시고 점심식사 겸 11시30분에 만나자며 잔소리는 말라시는 듯 뚝 끊어버린다. 다 들었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이는 아내에게 약속 시간을 이르고 본가로 돌아온다. 어머니 께서 웃집 감나무에 단감 좀 따다가 아이들 주지 그러냐시는 말씀에 곧 바로 웃집으로 달려가 소시쩍 줄기차게 오르내리던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후다닥 한박스를 따서 포장하고 크고 잘 익은 놈으로 몇 개를 골라내어 어머니 몫으로 마루에 따로 남겨 두고 본가로 돌아오니 아내가 다가오며 아버님 어머님 께서 갓 둘르시러 논에 나가셨다며 서둘러 가자는 눈치다. 창고에서 낫을 찾아 숫돌에 대충 문지른 후 아내와 함께 집앞 논으로 나간다. 나가는 길에 혼자서 논둑에 앉으신 채로 낫질을 하시다 허리를 펴시며 힘들게 일어나시는 종관이 어머니를 만나 인사를 여쭈며 근황과 안부를 전해드리고 잽싸게 논머리에 이르니 어머니 아버님 당산나무집 할머니 그리고 형수님 까지 군데군데서 벼베시느라 사람이 오간지를 모르신다. 아내와 함께 구간을 설정해서 이어 달리기 하는것 처럼 꽁무니를 터치하면 자리를 옮겨가자고 정하고 낫질을 시작한다. 금새 땀이 솟고 싹둑싹둑 쓱싹쓱싹 벼 잘리는 소리가 참으로 새삼스럽고 경쾌하다. 30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옛날옛날 그 옛날이리라. 벼를 베면 논바닥에서 2~3일을 말려가며 손치고 뒤집으며 밤새도록 매끼틀어 볏단볏단 묶어내어 논 가운대 벼늘을쌓고 용백이성이나 만호성 한테 겨우겨우 예약하여 마침내 그날이 오면 전쟁을 치루듯이 가을걷이를 하던, 소가 논밭을 갈고 홀태로 벼를 훑던 시절을 지나 대동엔진을 탑재한 경운기가 신장로를 내달리기 시작하며 "뚱개똥뚱개똥" 울부짖는 탈곡기 소리에 우리 아부지 어머이 애간장이 녹아 내렸던 족답식 탈곡기가 그 위상을 상실해 가던 시절!!~  날이 밝기 무섭게 논밭으로 불려 다니며 품앗이 벼베기에 허리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릴법 하고 가을이 점점 그 깊이를 더해가다 보면, 어쩌다 품앗이 가는 집이 서로 같아서 운좋게 동네 누나들과 한 논에서 상봉이라도 하는 날이면 얼마나 반갑고 신이났었던지 벼베는 내내 소곤대는 소리에 해 가는줄 모르게 하루해가 저물었지. 잠깐 쉬는틈에 허리라도 펼 순간이면 어르신들 몰래몰래 손짓 발짓 해대가며 저녁밥 일찍먹고 읍내 극장에 영화보러 가자는 뜻을 겨우겨우 전달해서 어렵사리 승낙을 받고나면 설렘으로 두근두근 들킬세라 조마조마!!~ 저녁 진지상에 빈그릇 소리 요란해지면 어르신들 숫가락 놓으시기 무섭게 설겆이를 하는둥 마는둥 약속 장소로 쪼르륵 모여들어 자전거를 짝지어 타고 있는 힘껏 폐달을 굴리면 환하게 둥근달이 웃는듯 길을 비추고 초롱초롱한 별무리 들이 사랑을 속삭이듯 깜박거렸지. 울퉁불퉁 자갈밭길 방천길을 내달리면 간뎅이가 떨어져 나가고 궁둥이 뼈가 내려앉을 만큼 요동치는 흔들림과 헉헉대는 충격에도 얼마나 신들이 나서 깔깔대며 웃어들댔는지ㅡ한번은 방천 끝 어딘가에서 돌뿌리에 충격을 받고 방뎅이 무게에 감당을 못한 나머지 자전거 뒤바퀴가 힘없이 내려앉아 리무가 엿가락 처럼 꾸겨졌는데도 너무도 태연스럽게 자전거를 벼논 속에 내 팽개쳐 두고 아무 일도 없던것 처럼 남은 길을 걸어내려가 영화를 잼있게 본 후 다시 그자리에서 자전거를 찾아낸 후 돌려가며 어깨에 떠 메고 오면서 온갖 우스개 소리에 배꼽들을 쥐어 가며 밤 새는줄 모르고 걸어 돌아왔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못할 꿈같은 추억이다. 그때 그 친구들과 그 누나들 아직도 그 추억은 고스란히 간직들 하신 채 세월을 잔뜩 묻힌 고고하신 모습으로 아들낳고 딸 낳고들 이 하늘아래 어딘가에서 그럭저럭 한세상 곱게들 늙어가시겠지!!?? 가끔씩 아주 드물게 그 추억 기억하시며---------------------, 초딩 3~4학년 때 쯤이나 됐었을까!! 아침일찍 불러 깨우시는 어머니 성화에 놀라 일어나면 소쿠리를 하나씩 챙겨다 주시고 논에 벼이삭을 주우러 가자시며 앞서시는 어머니를 따라서 시장에 소 끌려가듯 그렇게 장시래논 꼬시랑모랭이 논으로 내몰려다니며 벼이삭을 주워 모으곤 했었는데, 그땐 그 일이 그렇게 싫고 힘든 일이었는데, 형이랑 나랑 소쿠리나 비료 포대를 하나씩 들고 진서리가 하옇게 내린 가을걷이가 끝이난 텅 빈 들녘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황새가 먹이를 찾듯 고개를 빼들고 끼웃거리고 다니면 우리 어머니 그런 우리가 않돼 보이셨는지 나중에 벼이삭 모아 맛난것 사주신다며 우릴 달래주시곤 하셨었지, 그 어려웠던 시절에서 추억이 멈춰서자 코 끝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팽 돈다. 그 힘든 시대를 살아온 세대라면 어느 누구한테나 가슴시리게 간직하고 있는 흔한 추억이 아니겠는가??!! 맨 갓줄 한 줄만을 베는 작업이라 금방금방 진도가 확연하다. 하지만 종민형과 약속한 시간을 맞추기가 아무래도 무리일듯 싶어 미리서 전화를 드려 한 시간을 늦추자 양해를 구하고 나서 있는힘껏 낫질에 속도를 더한다. 결국엔 점심 시간이 임박하여 겸사겸사 작업을 도중에 중단하고 집으로 들어와 본가에서 함께 점심 드시는 것을 보면서 시장일을 보셔야 하신다는 장모님을 앞서시게 하고 아내를 재촉하여 형님차를 몰아 읍을향해 내달린다. 장모님을 상설시장에 내려드리고 나서, 새 집을 마련해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여직 인사를 못드렸음이 내심 죄스러워 아내에게 "그냥 가긴 좀 그렇지?" 하며 입주 선물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자 아내가 금방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화장지 꾸러미와 세제 보따리를 한꾸러미 들고 나온다. 망서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 수철이 태권도장으로 차를 몰아 주차한 후, 바로 앞으로 이사를 했다는 종민형 한테 전화를 건다. 기다리고 있었던듯 금방 대문을 열고 나오시며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신다. 아내와도 인사를 건네고 떡 애기때 보았던 아이가 벌써 훤칠하게 자라 초등 5학년이 되었다는 형의 딸아이를 보며 참 많은 세월을 무심하게 살았구나 하는것을 새삼 느끼고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슬그머니 감춘다. 형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아주머니 께서 금방 올거라고 하시며 앞집엔 명길이 친구가 살고 있다시며 앞 집 초인종을 누르자 집 앞 밭에 일하고 있을거라는 인터폰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눈을 돌려 먼발치 앞을보니 괭이질을 열심히 하고있는 사람이 시야에 잡힌다. 발걸음을 옮겨 명길이 임을 확인하고 인사를 나눈 후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형의 말에 예식장 선약이 있다며 손을 내젓는 명길이 친구를 뒤로하고 돌아서자 형 집앞에 차가 멎으며 아주머니께서 내리시는 모습이 보인다. 바삐 발걸음을 옮겨 인사를 나누고 모두함께 차에 오른다. 이미 오래전에 함께 식사하며 인사를 나눴던 적이 있었던 터라 그다지 낯이 설지는 않지만 너무 오랬만이라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12년여 세월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을 실감이라도 하듯이ㅡ한우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며 매장에선 부위별로 쇠고기를 판매하고 자리를 별도로 제공받아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개업한지가 얼마 돼 보이지 않는 넓고 깨끗한  한우 전문점 앞에 차를 세우고, 식육 매장으로 들어가 고기를 구입한 후 창이 훤히 내다 보이는 안 쪽으로 들어가 바깥쪽 자리를 잡고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둘이 나란히 마주보고 앉고 꼬맹이 예비 숙녀님이 탁자 머리에 자리한다. 자연스레 이야기가 시작되며 그동안 가슴에 쌓인 궁금함들이 실타래 풀리듯 솔솔 풀려나온다. 형과 연을 맺은지가 벌써 32년여, 고등학교 졸업후 진로를 모색하며 고민에 빠져 지내는 시기에 농촌지도소 지도 공무원 신분으로 우리마을을 오셨다 당시 농촌 계몽 활동의 주 무대였던 4H를 소개 홍보하는 과정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4H활동에 빠져들며 인연이 시작되었던 형! 무엇이 서로를 그렇게 끈끈한 정과 열정으로 이끌리게 했는지 그 시절 순간순간이 주마등 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나서기 싫어하고 지극히 소극적이고 소심했던 성격의 내가 형을 통하여 지역내 마을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4H를 전파하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순결한 청춘들과 가슴을 맞대 소통하며 삶의 지혜와 의미를 찾아 고민하고 동감을 이루며 한 시대 청소년 들의 의식에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청년기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그 청순함이 그 시대에 서로를 공감하게 했고 그러한 공감은 뜨거운 형제애가 되어 이렇게 오랜동안 우리 서로에게 추억할수 있는 고운 선물이 되어있음이 아닌가 하는 맘에 흐뭇하기가 이를데 없다. 술잔이 오가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가 허물없이 오가는 사이 그동안 공무원 신분으로 살아오는 동안의 애환과 그러한 남편과 함께하며 알게 모르게 참고 포기하며 살았다는 아주머니의 회한이 우리부부의 지난 한때 삶처럼 원망과 한숨으로 구구절절하다. 왜 아니겠는가!!~ 서로다른 두 인격체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과정이 어찌 항상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뚜껑을 열고 살펴보면 어느 가정인들 만사가 걱정없고 편안하고 행복하기만한 가정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는것 자체야 다 그만그만 하고 거기서 거기들 아니겠는가? 다투고 싸우며 다치고 깨져가면서 무뎌지고 이해하며 아옹다옹 살아지는게 대부분 모두의 삶이 아니던가 만, 아주머니의 가슴에 누적된 한과 설움이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듯 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서로의 이해를 도울 수있는 화제로 유도해 보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섭섭한 감정들을 해소하기에는 많은 대화와 시간이 더 필요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성한 아들을 앞서 보내며 그 엄청난 불행으로 부터 탈출하는 과정에 서로를 먼저 살피고 서로를 먼저 위로하는 시간이 좀은 부족했던 것이 작은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 전화 통화에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아들 녀석을 떠나 보내고 삶을 포기하고도 남을 만큼 혹독한 슬픔과 괴로움에 힘든 나날을 살아내면서 늦둥이 딸애의 귀염 떠는 모습에 앞서 간 자식놈의 자리를 모질게 잊으려 애쓰며 산다는 말에 위로의 말을 찾지못했던 때가 언뜻 생각난다. 그 때 그 어미의 심정이 어땠으리란 것을 감히 어찌 내가 표현해 낼 수 있으리----------------, 빈 술병이 한병,두병 늘어나고 쟁반 가득했던 고깃점이 빈 바닥을 보이자 꼬맹이가 먼저 자릴 털고 일어나고 우리 또한 포만감에 동감하고 친근감에 공감하며 함께 밖으로 나온다.(15:00) 꼬맹이를 집으로 먼저 보내고 차에 오르라 하시더니 곧장 노고단을 가자신다. 좋다고 맞장구를 치자 아주머니께서도 여태 여길 살믄서도 첨 가보는 길이라시며 싫지는 않으신듯 천은사 쪽으로 차를 몰아가신다. 굽이굽이를 돌아 성삼재에 이르니 제법 군데군데 가을색이 완연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설익은 단풍이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곳에 선듯하다. 옛날 모습들은 어디 한군데서도 찾아볼 수 없고 노고산장 역시 옛모습은 오간데 없고 현대식 건물에 노고단 대피소라 이름을 달았다. 경관좋은 곳을 골라서며 기념사진을 찍고 매점에 들러 음료와 캔맥주를 구입한 후 노고단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16:30) 자연스레 아주머니와 아내가 앞서  걸으며 대화에 빠져들고 나와 형이 나란히 걸으며 못다했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식당에서 잠시동안의 대화였지만 내 느낌과 생각을 차근차근 이어간다.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그 편안함 이란 포장속엔 무관심 내지는 암묵적인 무시가 숨어 있는듯 하다. 그러한 무관심과 외면 속에 어떻게 애틋한 부부애가 싹틀 수 있겠는가? 아주머니의 가슴에 쌓인 설움과 원망이 이미 그 정도를 지나쳐 있는듯 하다. 그 원망과 설움이 서로가 등 돌린 채 너무 멀리 가기전에 형이 먼저 맘을 바꾸고 돌려 세우셔야 한다. 남자의 사회 활동이나 사생활 보다 이젠 형의 가족,가정이 우선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라며 스스럼없이 가감없는 내 생각을 형께 이야기한다. 혹 내 이야기가 형께 부담스럽고 거북스럽게 들릴까봐 내심 긴장하며 내 진정이니 행여 오해 없으시고 형 자존심에 상처 없으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단호히 말을맺자 씁쓰레 웃으시며 "이사람!!~"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인간으로 보이는가?" 라시며 날 안심시키는 형이 한없이 고맙고 따뜻함을 느낀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갈깔린 등산로를 걷다보니 발자국 소리가 흥겹고 가슴은 훈훈하다. 쌀쌀한 기온이지만 등쪽엔 땀이배고, 어느덧 정상에 이르니 인적은 끊기고 금새 어둠이 내리더라.(17:25) 아내와 아주머니께 음료를 전하고 맥주캔을 따서 형 한캔 나 한캔,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니 심장 깊은 곳으로 부터 새로운 힘이 솟구침을 느낀다. 어둠을 배경삼아 사진을 몇 컷하고 우리 두 가족에 평안과 행운과 행복을 축원하고 이내 돌아서서 오던길을 재촉한다. 해 떨어지기 무섭게 한기가 배가 되고 짙어가는 어둠이 우리 발목을 붙들지만 아내의 손을 다정히 맞잡고 두 사람 보란듯이 처벅처벅 싸박싸박 앞서서 길을 찾는다. 아내의 손이 더없이 따뜻하고 내리막 길을 더듬거리는 아내의 발걸음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다. 싸득싸득 대는 발소리에 마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행복해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찐한 사랑과 함께 연민을 느낀다. 한참을 내리 걷다보니 두 분의 흔적이 없다. "형!!~" 하고 불러대자 아주머니 소리만 들려오며 조금 전 까지 가까이 왔었는데 오는 소리가 없다 시며 멈춰 서 있다. 오던길을 돌아서 가며 큰 소리로 불러대자 금방 바삐 내려오시며 볼일이 있었노라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발길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에 도착한다. 서둘러 주차요금을 정산하고 굽이굽이 가파른 길을 돌고돌아 나오며 뜻깊은 만남 특별한 추억에 두분께 감사하니 네사람 가슴은 더없이 흐뭇하고 한없이 행복하기만 하더라. 어둠속을 뚫고 산비탈 모퉁이를 무사히 빠져나와 우리를 안전하게 본가앞에 내려주시고 본가에 들러 저녘드시고 가라는 우리 청을 물리시고 어서 들어가라 손 흔들며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 아주머니와 형께 "당신들이 내 맘 안에 있어 우리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대들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 털어 내시고 믿음과 사랑으로 초심을 회복하시어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마음 섞고 살아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소원합니다!!~(18:40)
본가에 들러 어머니께 인사 여쭙고, 불이나케 다시 처가에 이른다. 수영이,미숙이 내외와 수철이 가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가 정겹다. 마당 그득한 콩 더미에 마음이 쓰여 수철이한테 "내일은 콩타작을 해치워야 하지않아?" 라고 하자 알아서 하겠다며 대책을 생각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간만에 들이킨 술에 술기운이 남아있고 어둠속을 서둘러 걸었던 탓인지 피곤함이 밀려온다. 살며시 자릴 일어나 아내에게 눈 인사를 고하고 컴컴한 골목길을 빠져나와 본가로 돌아온다. 조용조용 몸을 씻고 조카 아이들 방에 어머니 께서 정성스레 펴놓으신 포근한 이불 속으로 몸을 쑤셔넣고 나니 만사가 편안하고 흐뭇하다. 곱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준 형과 아주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콩타작 (10월 11일)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뜨고 일어나, 어제 구례읍 수철이 태권도장에 세워두고 온 형님 차를 가지올 요량으로 처가로 간다. 수철이가 나오면서 자기가 가서 차를 가져오면서 멧돼지 밥도 주고 산동 어딘가로 가서 콩 타작하는 탈곡기를 싣고 오겠노라며 키를 달라고해 잘됐구나 싶어 키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오니 아침 준비가 한창이다. 이래저래 10시가 넘어서야 탈곡기가 들어오고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함께 콩타작이 시작된다. 옛날 보리타작하던 타맥기와 모양이 비슷하여 기계만 좀 작고 모터가 설치되어 전기 방식이라서 누구나 쉽게 사용이 가능할것 같다. 시범을 보이다 다른일로 급히 출타하는 수철이를 먼발치로 보내고 나서, 아버님 어머님 수영이 동서가 각자 필요한 농기구를 챙겨들고 각각의 적소에 자릴잡고 바삐 움직이며 이웃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콩타작에 속도가 더해진다. 옛날 까만 썬글라스로 멋지게 쓰고 경운기 피대줄에 무섭게 돌아가던 타맥기 입속으로 보릿짚단을 능수능란하게 멕여넣던 만호성과 용백이성이 파노라마 처럼 눈앞을 스친다. 마당엔 먼지가 자욱하고 기계음 소리에 귀가 먹먹하며 좀 익숙해질만 할 무렵 고무타는 냄새가 코를 벌름케한다. 동서도 그 냄새를 인지 했는지 기계를 멈추자한다. 전원을 내리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개 꼬막 까기일 따름이지 우리가 뭘 알겠는가? 한참을 터덕대는 동안 이웃 성태 아재께서 오셔서 방식을 일러주시고 다시 시작을 해 보려는 순간 밖에 다른일을 보러갔던 수철이가 마침 돌아와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배출구가 막혀서 그런다며 한참을 파내고 돌리고 세우고를 반복한 끝에 배출 점검구를 개방한 채로 작업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다시 힘을 합한다. 탈곡기 똥구녕으로 쏟아지는 콩대를 긁어내며 콩알이 한조각이라도 헛으로 새지않도록 섬세히 갈퀴질을 해대며 콩대를 추려내는 아버님과 나, 콩 다발을 풀어 나르며 콩벼늘을 뒤적여대는 수영이, 수영이가 뒤적여 날라오는 콩다발을 얼킴을 풀어헤쳐 적당량씩을 조절해서 수철이 손에 옮겨주는 동서, 그것을 받아서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다 멋지게 쑤셔넣는 수철이, 먼지 구뎅이 와상에 앉으셔서 잡티를 골라내고 콩을 고르시는 필순님과 당산나뭇집 할머니, 물불 가리실것 없이 잠시도 쉴 틈 없으신 장모님, 그리고 먼지 난리통에서도 새참 준비하기에 분주한 미숙이와 아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부지런을 떠는 사이 콩 다발은 점점 그 더미가 줄어들고 노랗고 탐스런 콩알 무더기는 마대포대 수를 더해간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씌우고 등줄기를 축축히 땀으로 젖게한 후 우리 온 가족의 혼을 쏙 빼놓고도 한참 후 겨우겨우 콩타작은 그 끝을 보인다. 먼지를 털어내고 콩깍지를 쓸어담아 뒷뚱 멧돼지 축사에 콩깍지 포대를 털어 넣고나니, 콧심 쎄게 생긴 어미 멧돼지가 거품을 문채 씩씩거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살금살금 다가오자 다람쥐 처럼 귀여운 새끼들이 어미 주위를 바짝 따라붙어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하기만 하다. 탈곡기를 차에 싣고 산동 어느 마을에 원위치 하고 돌아오니 콩타작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 듯 하고 어느덧 시간은 오후 세시를 향해있다. 17시 15분 서울행 버스를 예약해 뒀으니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본가를 오니 형수님께서 낫을 들고 집앞 논으로 나가신다. 언뜻 시간을 보니 한시간 반여시간 내 열심히 거둘면 짧은 시간이나마 형수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바삐 장화를 신고 낫을 찾아들어 논으로 내달린다. 형수님이 나가시는 반대쪽으로 자릴잡고 갓 두르기를 시작한다. 코가 맹맹하고 허리 또한 시큰거리지만 벼 베는 소리에 리듬과 박자를 실으니 즐겁고 신이난다. 삼각진 논 각진자리는 넓다랗게 베어내 콤바인 돌아갈 운신의 자리를 만들고 가장자리는 한줄을 베어내어 콤바인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작업 "갓 둘러베기" 라고나 해야할지? 나야 이시간이 잠시 지나면 내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 이 힘든 농사 일에서 곧 해방이 되겠지만 형수님이야 가을 내내 이 힘든 일에서 못 벗어나실 것을 생각하니 한포기라도 내가 더 베어내야 하겠다는 생각에 있는 힘껏 낫질을 해댄다. 넓다란 논바닥을 서로 등을대고 베 나가기를 시작한지 한참만에 논 가장자리 한 중간 쯤에서 형수님과 마주보게 되며 겨우 끝을낸다. 땀 젖은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서로 수고 많았다는 말로 노고를 위로하고 형수님이 집으로 가시는 사이, 난 마당 앞 논으로 자릴 옮겨 각단을 잡고 갓 둘러베기를 계속한다. 대 자연의 보살핌이었으리라. 태풍 한번 없이 추수 철 날씨까지 깔끔 스러우니  형님 형수님의 애쓰신 덕이 대 풍년을 이뤄서 벼포기를 베어 들때마다 나락 모가지가 출렁출렁 몽창몽창하다. 올해들어 유달리 벼 농사가 잘 되었다시며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을 바라보시며 만족해 하시던 형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한정된 소비량과 제한된 매상량 그리고 마땅한 판로가 없다보니 가격 하락은 물론이고 처치곤란할 정도 까지 이르렀다 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삶의 근간이 되어야할 먹거리 산업,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 하고 보호받아야 마땅할 식량을 생산하는 농촌과 농민이 무시와 천대로 외면받기 일쑤고, 그러다보니 정책과 지원 마저 걷돌고 헛나가고ㅡ 이 때가 되면 반복되는 불안과 불만이 농촌을 점점 더 힘들고 시름깊게 하는 것이리라. 언뜻 들리는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에 논을 뛰쳐나오며 휴대폰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17:00. 여차하면 버스 시간을 놓칠수도 있겠다 싶어 대충 먼지를 털어내며 씻기를 생략하고 옷을 갈아입고 구두를 신으면서 처가를 향해 달린다. 아버님 장모님 그리고 수영이 등등의 가족들께 작별 인사를 드리면서 이미 우릴 터미널에 바래다 줄 준비를 하고 시동을 건채 기다린 동서네의 차에올라 어서가자 재촉한다. 나오는 길에 다시 본가를 들러 어머니께서 꾸러미꾸러미 싸주신 보따리 와 박스를 실은 후 인사를 건성으로 드리고 길을 재촉한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화장실 들러 채비를 마치자 마자 서울행 버스가 들어온다. 한숨을 몰아쉬며 미숙이네에 작별인사와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 꾸러미를 짐칸에 밀어 넣은 후 좌석 번호를 찾아 뒷 자석에 앉는다. 차창 밖 미숙이네 한테 손을 흔들어 보이자 마침내 버스는 터미널을 빠져 나간다. 이렇게 2박3일 동안의 흐뭇하면서도 안타깝고 미안하고, 힘겹고 피곤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했던 고향 지동촌에서의 꿈같은 시간들을 뒤로 남긴채 버스가 속력을 더하기 시작한다. 읍을 벗어나 용방 교통로를 가로질러 서울을 향해 줄달음을 쳐가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의자 깊숙히 몸을 기대자 한순간에 긴장이 풀리고 온 몸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노곤함이 순식간에 밀려온다. 등 기댄 의자를 뒤로 젖히다 깜짝놀라 몸을 세우고 뒷 주머니 속으로 손이 간다. 아이구여!!~ 이를 어쩜 좋아??~ 허둥지둥 서두르다보니 지갑 터는걸 잊고 왔네~ 어머니 용돈과 아버님 제사 비용으로 한켠에 꼬불쳐 뒀던 그 돈들이 머쓱한듯 그대로 남았네. "쯔쯔쯧 바보 똥바보 같은놈!! 뭐이그리 바빴다고 그걸 다 잊고~" 아내도 한심한듯 "쯔쯔쯧!!~ 어찌 그걸!!"~ 미안스럽고 죄스러워 고개 돌려 뒤를보니 썬글라스를 끼고 보는 풍경 처럼 아쉬움 남은 컴컴한 지동촌은 자꾸만 뒷걸음질 치며 잘 가란듯 흔들거리고, 대풍을 이룬 황금 들녘은 풍요 반 근심 반이더라.
  
2009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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