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기다림 끝 여명이 꿈틀대는
잠 못이룬 도심곳곳 눈꼽 묻은 이른 새벽,
아내와 단 둘이서 나란히 자리하고
고향 본가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맘
마냥 즐겁고 신나고 설레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어둠을 밀쳐내고
중부고속도로 콘크리트 바닥을
힘차게 밀어내며 미끄러지듯
물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내달리는
내 사랑스런 애마 새내기 포터트럭
빠르고 부드럽고 안락하고 쌈빡하고,
동녘산을 짚고 올라 붉은미소 둥근얼굴
5월 첫 밝은 태양 맑고 크고 붉고,
힘차고 아름답고 찬란하더라.
세시간 사십여분을 내달려 지동촌 문전에 당도하니(07:55)
이미 벌써 못자리판은 시작된지 오래 전일쎄.
허겁지겁 아침 때우고 헐레벌떡 못자리판에 서니
그리운 분 들의 오가는 인사 정겹고 사랑스럽고,
일 서둘며 재촉한 소리 분주하면서도 포근하고
청보리밭 보리냄새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건만
그 옛날 그 청춘들은 어느새 백발이고,
굽어진 허리를 받치고 서서 입 심만 살았더라.
누이동생 배웅하고 되 돌아 선 구례구역
내 아이들 어렸을적 걸리고 업고 꾸러미 들고,
열차시간 늦을세라 두근두근 종종걸음
옛 추억 환영 속에 시린기억 슬픈미소
아내 손에 내 손 포개 그시절 회상하네.
지천리 삼거리를 직진으로 내달려서
방광리 삼거리서 사랑재를 넘어서니
쓰레기 매립장에 생활폐품 산더미고,
그 주변을 가리고 선 개꽃 봄꽃 관상식물
시침을 뚝 떼고서 손사래만 치더라.
콘크리트를 뒤집어 쓴 꺽지바구 바위틈에
샘물 졸졸 흐르던 그 흔적 오간데 없고,
하늘을 찌르듯한 무성한 왕대밭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처럼 정신 사납기 이를데 없고,
굵고 마디 긴 진청색 몸뚱어리에 비밀 숫자를 문신하고
긴 몸 흔들며 관능미를 자랑하던 그 왕대 행색은 어디가고,
곧게 선것도 힘겨운지 반쯤 누워있더라.
아름드리 아카시나무 앞동산에 무성하여
해마다 5월이면 앞동산이 천국이라
쑥꾹새 울음소리 심금을 울리고,
웅웅대는 꿀벌소리 비행기 소리 흡사했지.
하얀 쌀티밥 꽃망울 흰 속 치맛자락 처럼 뒤집히면
하얀 꽃 물결 꽃 터널을 이뤄,
아카시꽃 꿀 향기로 온 동네가 향긋하고
내고향 지동촌은 5월 내내 설렜건만,
아카시꽃 향기가 어젯 일 처럼 생생하고
아카시아꽃 추억이 새록새록 그리운데
민둥산 산 거죽엔 잡초만 무성하고,
코흘리개들 동원하여 어렵사리 심었던 감나무만
군데군데 드문담상 그 추억을 간직하고
연초록 미소속에 슬픔만 묻었더라.
잡초 속에 몸 가린 찔룩나무 반가워
조심스레 다가가서 실한 찔룩순 두개를 꺾어
가시 따고 껍질 벳겨 아내 하나 나 하나
입에 넣고 잘근잘근 추억 새기며 오물오물.
밤이면 몰래몰래 연애질 하던 매뚱 가를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끼웃끼웃 넘보는데,
옆에선 왕 대나무 저는 알고 있다는 듯
긴몸 흔들며 히죽히죽 깔깔대며 얼레~꼴레리~
마주잡은 아내 손에 다정함이 뭉클하고
마주보는 두 눈가엔 사랑이 하나가득.
해는 중천을 지나 서산에 가까울적
시장보러 가자는 아내 분부 받잡고,
애마를 돌려세워 장모님 복례님을
뒷좌석에 모시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서쪽 점빵 대문에서 좌우를 살펴가며
핸들을 꺾는 찰라 정희성집 담 넘어에
뜻밖에 반가운 얼굴 필순님과 정희성 내외,
웃는 얼굴 마주하며 담 너머로 인사하고
잠시 후를 약속하며 가던길 재촉하네.
구례읍 매일시장 옛 극장 앞에 차 세우니
장모님과 아내 발걸음이 날듯 장 속으로,
차창 밖을 스쳐가는 종래를 불러세우니
여기서 또 보노라며 반가히 다가서서,
지 어머니 병수발에 2년여를 보냈건만
연로하신 몸에 정신까지 놓으셔서 이젠
하는 수 없어 요양원에 모시고 있노라며
그나마 사실날도 얼마남지 않은가 보단다.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보다 훨씬 더 뒤틀린 세상
피폐한 농촌, 소외된 자신, 막막한 현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더 힘겨운
좁아진 어깨 움츠리고 돌아서가는 뒷모습은
안타깝고 안쓰러워 더 서럽고 더 맘 아프고,
이곳 저곳을 휩쓸며 어미제비 먹이 나르듯
아내의 잰걸음이 차와 시장간을 들랑날랑 하는 사이
적재함은 금새 먹거리 찬거리로 그득하고
장보기를 끝내시는 두 어른이 승차하시고
장 거리를 점검하고 조수석에 아내가 오르니
이내 애마 똥구녕이 툴툴툴툴 부릉부릉~
허름한 자전거를 조심스레 비벼타고
회관앞을 지나 당산 마당에 이르노니
마을 안으로 들어서던 차 한대가 멈춰서서,
드르르륵 문이 열리며 형! 뭔일이냐며
만면에 웃음짓고 재희가 다가선다.
반가히 손 내밀어 악수를 나누는데
일기도 다가오고 성중이도 다가서고,
어디선가 휙하고 철희도 나타나고
먼 발치 대문앞에 수택이 형님도 손 인사,
순식간에 당산은 반가움으로 가득하더라.
철희 재희 이끌림에 그들 집으로 옮겨가서
예전 모습 변함없으신 철희 어머니께 인사 여쭙고,
방방이 구석구석 눈여겨 살펴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생생히 꿈틀하네.
병호집 뒷마당엔 여직 그득한 장작더미
자욱한 먼지를 쓰고 한 세월이 덕지덕지
아직도 그 시절을 못잊어 그리워하는가?
언제쯤 고랫구녕을 시뻘겋게 달궈가며
아랫목 펄펄끓게 군불지필 날 있을꺼나?
이 셋 물고기 귀신들 언제 나가 뭔짓을 했는지
얼큰한 매운탕 냄새 한마당 진동하고,
이윽고 뚜껑을 연 매운탕이 냄비가득
철희 한잔 성중이 한잔 재희 한잔 나도 한 모금
술잔은 춤을추고 추억은 세월을 넘나들며
어느새 중년 넷은 개구쟁이 악동이 되더라.
지동촌에 어둠 내려 정적이 짙어가고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향해 가니,
학교 수업 마치고 기차로 내려온 아들녀석
그 녀석 손 붙들고 님 따라 온 이쁜 현진
역전에서 마중하여 본가에 먼저 들러
내 어머니 84해 생신을 축하 드리고,
서둘러 일어나서 외가에 인사 여쭙게 하니
하루가 다 지나고 또 하루가 금새 밝더라.
2009년 5월 1일
지동촌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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