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채
추스르기도 전,
이맘때면
으레히
습관 된
연례처럼,
매서운 칼바람
점령군처럼 앞세워
가을 잔해 더미에
휘몰이를 시작으로,
삭막한 고독
감추련 듯,
헛헛한 설움에
소금절이를
하는 것처럼,
동토의 계절을
예고함과 함께,
새하얀 눈꽃 천국을
축조키 위한
첫눈이 사박사박
내리는 날이면,
당혹스러움과
아쉬움을 동반한
또 한 설렘을 못내
감추지 못한 채
깊숙히 몸을 움츠려
옷 속에 욱여넣고,
틈틈이 빼곡한
삶의 파편들을
조각 맞춤 하며
더듬더듬 숨가쁜
역주행을
시작해 갑니다.
무수한
갈색 추억 더미
무덤을 지나
아직
선혈이 낭자한
핏빛 능선을 넘어,
애절한
풀벌레 소리와
계절 전령사들의
우렁찬 곡소리가
한 낮 온밤을
주야장천
지새울 제,
거대한 폭풍우가
한여름 태양을
손아귀에 넣고
입 안에
왕사탕 굴리듯
희롱과 능멸을
일삼으며,
천둥번개가
불칼 춤을 춰대는
진초록 숲을 건너서,
신록은 계곡을 넘어
초록 바다를 이루고
싱그러운 파문이
아스라한
수평선을 넘어서 가면,
화려한 꽃비가
바람과 함께
아지랑이 속으로
아롱아롱 사라져 가는
어느 꿈결같은
아름다운 날,
새파란 청춘
팔팔한 젊음
용솟음치는
열정과 욕망에
자지러질 듯
몸서리를 치는
아련한
흔적을 쫓아,
향긋한 꽃 향기
머물고 간 자리
노랑나비 흰나비
너울너울 떠난 길
저 먼 지평선
그 끝으로부터,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눈꽃이 만발한
순백의 설원,
꽁꽁 언 손
호호 불며
눈덩이를 굴리는
해맑은 영혼,
그
천진무구한
천둥벌거숭이를
마주한 채,
마침내
멀고 긴 역주행을
그 영혼 앞에서
멈춰 세웁니다.
예순여섯 해를
거슬러 돌이킨
결코 짧지 않은
내 삶의 여정,
어느 들녘,
곱고 화려함을
탐하지 아니하고,
기억하고
눈여겨 보는 이
단 한 사람 없어도,
언제나 그 자리
변함 없는
강인함으로
질기디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름 없는
들풀 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비루하지도 않은
빛나지도 않지만
누추하지도 않은,
온 곳도 모르지만
갈 곳도 알 수 없는
한 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잠시도
되돌릴 수 없는,
그 누구라도
대신하지 못할
정처 없는
나그네 길,
언제
어디서 어떻게
종착역에
이르게 될지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끝 없이 이어 갈
나의 길 위에서.
2023년 11월 29일
(첫눈 오는 날)
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