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여를 해묵혀 둔
피땀 서린 팔봉산을
두 산벗님 동반하고
탐방 산행에 오른다.
굽이굽이 여울지다
팔봉산을 감싸고
휘돌아 나가는
홍천강을 배수진으로,
자연을 볼모로 한
앵벌이 사업소
(매표소)를 통과(10:20)
(성인 1인 1,500원),
생소한 진입로지만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등산로를 따라
좌측으로부터
제1봉을 경유
가슴 벅찬 진격을
시작한 지 채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송골송골 땀방울이
얼굴에 뒤범벅이 되고
굵은 땀방울이
가슴팍을 간지럽히며
앙가슴에 흥건히
흘러내리는
쾌감을 만끽하며
어느 먼 세월
건너편으로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난다.
혈기 충천한
팔팔한 젊음이
치솟는 파도처럼
용솟음치던 때,
국방 의무라는
올가미에 걸려
33개월 동안
청춘을 억압한 채
그 한계를
아슬아슬 오가며
힘겨운 몸부림 속
탈출구를
찾는 것처럼
이 고지 저 능선을
밤 짐승처럼 넘나들며
야간수색 및 정찰,
24km 산악구보,
야간 침투 및 습격,
야간 도피 및
탈출을 일삼던
용맹스러운
수색대 용사의
깡과 악의 근성이
꿈틀거렸던,
그 시절 그때를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 시절 그 당시엔
수색 대대 관할
작전지역으로서
살벌함이
존재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수 세월이 묵혀지고
썩히는 동안
관광객 유치를 위한
#팔봉산 유원지가
생겨나고,
봉우리 봉우리를 잇는
등산객의 발길에
빗장이 풀려버린
팔봉산 등반길은
그 시대 그 시절
수색대 용사들의
온갖 애환을
비밀스레 간직한 채,
밤새는 줄 모르던
군홧발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듯
세월의 무상함에
말문이 닫혀버린 것처럼
진초록 능선 틈새에
훤히 등산로만을
내어주고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강원도에
위치한
산치고는 비교적
낮고 아담하며
봉우리 봉우리마다
제각각의 수려한 멋과
조망을 간직한 채,
아기자기하면서도
우뚝우뚝 솟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받들고
면면이 초록인
산자락과
봉봉이 암릉을 수반한
파도 능선을
여울진 물길이
휘돌아 싸 안은 듯
그림처럼 어우러져
줄 이은 산동호인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제각각의 봉우리마다
인증 폰 사진 촬영으로
걸음이 동동
붙들려져 있다.
얼마나 멋진
우리의 산하인가?
얼마나 수려한
6월의 신록인가?
군대 시절 그 당시엔
감히 상상도 못 해봤을
이 자유로움과
여유로움과
이 아름다움에
그저 가슴 뭉클한
감회와 감흥만이
새록새록 깊을 뿐,
아직도 생생한 것은
그 시절 이맘때
야간 훈련을 마치고
부대 복귀하는 날이면
골절, 외상환자 등
온갖 환자들이
줄지어 몰려와
비좁은 의무실이
애처로운
신음 소리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으며,
특히 온몸이 옻이나
두드러기처럼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심한 가려움증을
하소연하는
풀독 환자들로
벽이 물러날 정도
였다는 사실을,
봉우리마다
제 것인 양 눌러 차지하고
인증 사진을 찍어대는
저 산 동호인들이야
알 턱이 없으리라.
어느 한 봉우리
허술함이 없는
절경과 비경을
면면이 스크린하고
제4봉의 풍광을
휘돌려 조망한 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으니
팔봉산도
식후경이라~,
각자 챙겨서 온
먹거리를
한자리에 펼쳐
서로에게
권커니 받거니
참을 나누며,
지난 망우산 산행 이후
오랜만인 터라
그동안의 안부와
일상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넘실넘실 채운
막걸릿잔에
김 대장의 넉넉한
웃음이 첨 해지고,
한 잔 정도야
갈증 해소를 핑계로
김 총무께도 넌지시
반 잔을 권하여
서로의 건강과
오래도록 이 우정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곳에 내 추억을
아는 것처럼
오늘
팔봉산 산행을
주선하고 우릴
용문역에서 픽업하여
여기까지 안내한
김 총무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배와
축배를 올린다.
한동안 이렇게
진한 우정과
각별한 마음을
나눠 간직하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재촉,
제5봉을 시작으로
파도를 타는 듯
제6봉과 7봉을
오르락내리락 찍고,
제8봉을 넘고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정경에
바람도 쉬어갈만한
탁 트인 예쁜 곳으로
자리를 정하고,
아껴둔 막걸리 한 병을
꺼내면서 슬며시
팔봉산에 얽힌
아련한 나의
추억과 더불어
#굴지리 유격장에 대한
나의 군대 시절
무용담을 풀어내며,
해묵은 세월 속
아련한 추억을
들춰내 보이듯이
차근차근 조곤조곤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두 벗님 또한
은근슬쩍
자신들의 군대 시절
추억담을 간간이
끼워 넣으며 자연스레
흥이 고조되어 간다.
김 총무께서 슬며시
돌아앉아
커피를 끓여 내고
어렵게 우려낸
봉지커피 한 잔에
진 우정이
오롯이 녹아,
달달한 커피 향이
입안에서 오래도록
묵혀질 때까지
서로의 군대 이야기로
한 세월을
거슬러 오르다
쫓기듯 다시 일어나
남은 하산길에
초집중을 기하며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지의 계단을
조심조심 내림 끝에
마침내
홍천강 언저리를 휘도는
둘레길과 맞닿은 지점에
하산을 완료한다.
팔봉산을 휘돌아 가는
폭넓은 강줄기 앞에서
저 먼 산을 무릎까지
물속에 가둔 채,
멀리멀리 펼쳐진 수면을
한동안 바라보며
고향과 같은 포근함이
얼마나 평온하고
정겨운지 우린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신발 먼저 서둘러 벗고
물속에 발을 담근 후
시원히 물을 끼얹어
땀을 씻어 내고
물기를 털어내며
앉기 편한 바위를
하나씩 골라잡아
제각각 편한 자세로
수면을 마주하며
나른함과 피곤을 잊은 채
스르르
물멍에 빠져든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자유,
여유와 평온,
무상, 무념,
마음은 무한
평화롭고
가슴은 한껏
여유로운,
마치
인간의 태곳적 동산에
맨몸으로 누워
원초적
인간으로의 회복,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
곧 이 순간이
아닐까 싶을
큰 위안과 행복감을
누림 한 후,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가는 김에 굴지리
유격장을 경유해서
가 줬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전하며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갈 채비를 서둔다.
김 총무 애마(개인택시)에
승차하여 출발과 동시
출출함을 호소하며
곡기를 채우고 가자는
두 벗님의 뜻에 공감,
김 대장께서 근처의
멀지 않은 곳에
언젠가 한 번 다녀간
기억이 있다는 곳으로
안내에 따라 찾아 들어간
목포 민물매운탕집에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늦점심 겸
이른 저녁을 마치고,
다시 굴지리 유격장을
찾아가는 길,
이곳을 향해 갈 때면
늘 그렇듯,
심장에 얼음주머니를
찬 것처럼
시리고 아린 그리움을
겨우 눌러 삭이며,
홍천강변을 유유히
달리는 차 창 너머로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 줄 흔적이라도
찾아보련 듯
언뜻언뜻 스쳐 가는
정겨운 마을과
산과 들과 밭에
시선을 집중한 채,
시린 그리움에
차마 지우지 못한 이름,
이승에서 부르다
저승까지 가져가야 할
그 이름과의 인연을
새록새록 기억해 내며,
서글픈 추억에
몰입하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어느새
김 총무의 애마가
굴지리 마을 입구
화양초등학교 분교
앞을 지나서
마을을 통과
유격장 산악 교장
앞을 지나려 하자,
급히 차를 잠시
멈추게 한 후
먼저 차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며
귀를 의심하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예전 같았으면
지금쯤
유격훈련에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올빼미들의 피 터지는
함성이 산천초목을
들었다 놨다 하고도
모자랐을 판이지만,
쥐 죽은 듯 산은
말이 없고
굽이진 하양강은
유유하기 그지없다.
문득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던
옛 고려 충신 길재의
시조(회고가) 한 수를
떠올리고 세월의
무상함에 표식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줄 타고 절벽 뛰어내리기
교장을 필두로
저만치에 외줄 타기와
두 줄 타기 교장을 지나
먼발치 산허리에
석 줄 타기 교장 로프
아래에 안전망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발견하고는 그나마
유격장에서 나의
군 생활을 입증할 수
있음에 만족하며,
수직낙하 교장과
수직 하향 본 코스 교장의
폐허 된 잔해를 가리켜
굴지리 유격장의
악명 높은 두 물 코스
교장이었다는
부연 설명에
두 벗님께서도
그 잔해와 흔적에
유격장으로서의
존재감을 수긍하고,
나의 유격장 생활 등
이곳에서 이루어진
서글픈 인연의 역사와
애절한 순정 소설과 같은
비련의 소녀 찾기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고백에,
두 벗님의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연민스러운 표정을 보며
그나마 다소 좀 위안을 얻고
아쉬움을 뒤로하며
차에 오른 후,
유격장 정문 위병소를
먼발치로 스쳐 지나
오늘 등반을 위한
합류 지점이자 회기 지점
용문역을 향하여
김 총무의 애마가
잰걸음을 시작한다.
넉넉한 웃음과
묵묵한 리더십으로
근우회 신 벗을
이끌어가시는 김 대장,
김 대장(성봉)과 함께
산벗산행을 위해
성실하고 진솔히
봉사와 열성을
다하시는
김 총무(정식)와 셋이서,
나의 군 생활 격전지
팔봉산을
등반함과 함께
내 안의 서글픈
추억을 간직한
굴지리와 유격장으로
멀고 긴
시간 여행을 떠났다
돌아가는 마음이
더없이 기쁘고,
고맙고 감사하며,
나의 끝나지 않을
서글픈 그리움의
그 소녀 아니 그 여인
그 이름 #지희순!!~
부디
어느 하늘 아래
어디에서든 곱고
행복하게 살아만
있어 주기를!!~
2022년 6월 19일
(팔봉산 산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