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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천왕봉의 5월 설화

 

 
 
 
 

2021년
5월 1일 22:00 시
사당역 1번 출구에서
산벗 넷이 도킹하고
신갈 버스정류소에서
1벗 합류 후(5벗),
2021년
5월 2일 03:00시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로부터
천왕봉을 목표로
진격 개시,
헤드랜턴 불빛에
등산로를 밝히며
칼바위를 지나
법계사를 경유,
예기치 못한 추위와
근육경련에 시달리며
설빙 빙판길을
더듬더듬 아슬아슬 올라
마침내
5월의 춘설과
설풍이 난무하는
천왕봉 정상에
족적을 올리다.

(07:00)
 
 
 

 
짙은 어둠이
김총무 애마
창 유리를 핥아대는
깊은 밤 낯선 어둠 속을
쉼 없이 질주한 지
세시간 반여,(01:30)
긴장의 탓이었을까?
김대장의 급체증 호소에
휴게소에 잠시 차를 멈추고
민간요법을 활용
손가락을 따려 한데,
바늘은 물론이거니와
옷핀 하나가 있을 리 만무하니
차 안과 배낭을 온통
뒤집은 끝에 겨우 찾아낸
쪽 가위 끝으로 혈을 풀어
기순환을 회복하고
사당역에서 출발한 지
5시간여 만에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
잠시도 쉴 틈 없이
등산 준비를 마치고
진격 개시!!~
 
어둠 속을 휘젓는 바람이
아직도 지리산엔 북풍한설이
한겨울을 붙들고 있는 듯
온몸을 엄습하는 거센바람과 냉기가
만만찮음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앞서가는 벗님들 헤드 랜턴 불빛을 따라
등산로를 더듬어 가는 발걸음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
지난 대청봉 등반 시 근육경련으로
고생스러웠던 기억을 저버릴 수 없어
천왕봉 등반이 공지되는 날부터
밤 운동을 시작하고 주일 산행을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으며 나름
준비한다고는 하였지만
지리산 천왕봉이 어디 호락호락
마음먹은 대로 오갈 만한 산이던가!!?
 
제대 후 한 여름에 고향마을 아우들과
천왕봉 등반에 나섰다가 반야봉에서
악천후를 만나 빗속에서 일박 후
더 나아가지를 못한 채 피아골로
퇴각했던 이후, 삶이 뭐였던지
좀처럼 등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지리산 품이 탯자리면서 그 정상
천왕봉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늘 부끄러움과 함께 자존심이
낮아 있었던 터라
지난 대청봉 등반 이후 김총무님께
내친김에 천왕봉 등반을 급히 제안했던 것이
4월 산행계획으로 공지가 됐던 것인데,
 
이에 김성봉 대장 또한 천왕봉에 첫 도전
상인이 친구는 이번이 세 번째의
도전이라는 점이 참여 의욕을 고조시킨 데다
인모친구의 개인 사정으로 참가 취소에
희창도우미께서 다시 원대 복귀하여
김총무 개인택시 애마에 산벗 5명이
정원 충족하고 등반에 나섰던 것.
 
한 시간 여를 초긴장 속에서
일보 일진 하다 보니 등에서 후끈
땀이 나기 시작하고,
살벌하던 바람도 그다지
한기를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한결 부담은 덜한 듯하나
법계사 인근에서부터
울퉁불퉁 굴곡진 돌길에 눈이 얼어붙은 채
급경사 구간이 계속되는 바람에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 되다 보니 줄곧 우려했던
허벅지 근육경련과 통증이
간간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등반 전 희창 군께서 건네준
진통제의 복용 덕분인지 경련과 통증이
더 이상 가중되지는 않으면서
속도를 낮춰 한걸음 씩 쉬어가다 보면
다시 걸을 힘이 생기곤 하며,
뒤에서 내 보조에 맞춰 든든히
나를 응원해주며 지켜봐 주는 김총무의
격려에 큰 힘과 위안을 얻고
특히 건강이 많이 약화 되었다던
상인이 친구가 손과 발이 얼어
감각이 무디다면서도 내
내 선두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포기치 않은 끈질긴 근성에
감히 다른 생각을 품어 볼 겨를 없이
그저 주저앉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를 뿐,
바람에 간간이 뒤섞인 눈발 탓에
여명이 밝은지 동이 트는지도 모른 채,
잠시잠시 쉬어가는 틈 사이로
살며시 어둠이 사라지고 나니
이제 막 피어난 분홍 진달래꽃이
밤새 서리꽃이 되어 하얗게
질려있는 모습으로
마비된 것처럼 꽁꽁 얼어붙어
찢어갈 듯 거센 바람에도
꼼짝을 못 하는,
그 애처로움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천왕봉 정상을 향한 진격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기를 네 시간여
밤인지 낮인지 모를 희뿌연 하늘과
천지를 개벽할 것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에
거친 숨소리를 휘파람 소리처럼
길게 내뱉으며 마침내,
지리산의 신성한 기운이 운집한
천왕봉의 정상에
고독히 자리를 보존하고 우뚝 선
천왕봉 정상석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영광과 행운을 누리다.
(07:10)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는
지리산의 일출과 5월의 풋풋함을
눈에 담을 수는 없지만,
지리산이 선물한 5월 춘설과
천왕봉이 꽃피운 5월 설화를
한눈에 담고 한가슴 간직하게 된
기쁨과 희열에 무한 감사하며,
악조건 속에서도 무탈하게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어준
희창군과 정식군에게 깊이 감사하고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속에
천왕봉 정상에 첫 족적을 올리게 된
성봉군 상인군과 함께 자축하며
천왕봉의 신비와 정기를
맘껏 누리고 취해본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 때문인지
정상에 머무는 등반객은
한두 명에 불과하고,
거센 바람에 시야까지 잔뜩 흐려
조망일랑 아예 기대하지를 않았던 터라,
천왕봉 정상석을 배경 삼아
인증사진만을 서로 번갈아 가며
폰 카메라에 담은 후,
뿌듯한 가슴으로 하산로를
장터목산장 방향으로 정하고
개선장군처럼 보무당당히
서둘러 천왕봉을 물러 나온다.
 
제석봉을 거쳐
장터목대피소까지 이르는 동안
우린 지리산이 꽃피운 5월의 설화와
밤새 눈과 바람과 혹한이
합작해 만들어 낸
상고대에 사로잡혀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시리도록 눈부신 아름다움을
뒤로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폰 카메라만 세웠다 뉘었다를 반복할 뿐
아무도 어서 가자 길 재촉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천왕봉의 일출이 장엄하다 한들
이 서리꽃만큼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우린 털끝만큼도 아쉬움 없는 마음에
서로들 공감하며 자꾸만 등 뒤에 남겨진
5월의 지리산 눈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장터목대피소에 무사히 입성한다.
 
비교적 한산한 취사 동에 한 자리를 차지
김대장과 김총무가 준비한
진수성찬 못지않은 풍성한 먹거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아침 겸 점심의
곡기를 채우는 중,
라면의 진미를 보여주겠다는
김총무의 열의가
가스 버너에 불을 붙이면서,
가스 유출이 있었던지
갑자기 버너 자체에 불이 붙는 바람에
모두가 기겁하고 달겨들어
황급히 진화를 마치고 나서야
하마터면 장터목대피소를 화마에 내줄뻔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래도 끝내
꿋꿋이 끓여 낸 김총무 표 라면의 맛에
웃음으로 답하며 그 위험 순간을
금시 잊고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공유하며 5벗 간 흐뭇한
우정과 믿음으로 간직한다.
 
유암폭포를 지나
칼바위분기점을 경유하는 동안
지리산에 현존하는 겨울과 봄을
동시에 즐감하는 즐거움과
천왕봉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5월의 신록에 신선함을 만끽
피곤함도 잊은 채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선율에 휘파람을 불며
중산리 원점으로 회귀 완료한다.
(12:00)
 
김총무 개인택시 애마에 모두 승차하고
중산리 계곡을 빠져나온 후,
계곡 하류 맑은 냇물에 발 담그고
시원히 머리까지 감아 땀을 씻고 나니,
가슴엔 지리산 천왕봉의
성운으로 충만하고 신성한 기운과
지리산의 맑은 정기가 온몸에 배인 듯
모든 피곤과 뻐근함이 땀과 함께 씻겨
중산리 계곡에 녹아 흘러 사라진다.
 
5 산벗 모두가 무사히 지리산 천왕봉에
족적을 올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된 채,
모두 함께 지리산 산신님께 감사하고
서로의 진정한 우정의 교감에
고마움을 전하며,
어제오늘 간 우리가 쌓아 올린 추억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내
서로의 삶에 소중한 힘과 끈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차창을 활짝
열어젖힌 채, 제철 맞은 아카시아꽃에
진한 향수를 음미하며 예전만 못하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설렘이 덜함을
아쉬워하는 동안,
목적했던 병천 아바이순대 마을
쌍둥이 순댓집 주차장에서 김총무 애마가
질주를 멈춘다.
 
이내 곧
먹음직한 모듬순대 차림 상에 허기를 달래고
순댓국과 이슬이 한 병에 곡기를 채우고 나니,
세상 더 부러울 것 없고
이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할 것들 뿐이며
대청봉에 이은 천왕봉에까지
유통기한 만료 전후 연식에
족적을 올리고 그 성스러운 정기를
눈과 가슴에 담았다는 사실에
으쓱 양 어깨를 들어 올려
그동안 천왕봉에 대한 부끄러웠던 감정을
말끔히 털어내고 뿌듯하고 드높은
자존심으로 꽝꽝 눌러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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