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찐따가 되었습니다.
기순 누님 아들 혼사
예식장에 가는 길,
차 뒷좌석에
노상 싣고 다니던 구두를
헐레벌떡 꺼내 신고
시험일랑 뒷전으로 미뤄둔 채,
빗길을 뜁니다.
불행은 예고가 없다던가?
왠지
급하기만 한 발걸음이
자꾸만 느슨거립니다.
구두 뒷굽이
견공 혓바닥처럼
낼름거림서요~
시간은 벌써
두 시가 코앞인데
뛰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함서
어찌어찌 지하철엔 올랐는데,
누가 볼까 두려워
잔뜩 긴장하며
서현역을 내려서
택시가 오가는 곳까지
빗물 흥건히 고인
아스팔트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합니다.
간신히 다다른 예식장
이미 결혼식은 진행 중이고
정겨운 얼굴들이
반갑게 손을 내밉니다.
부자연스런 움직임에
행여 오해를 불러올까봐
넉살스레 발을 들어
구두 밑창을 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가?
형님과 누이가 급히 오가시며
고무 밴드를 잔뜩 구해다 주십니다.
발등과 밑창 뒤꿈치와 굽을
밴드로 엮어 묶은 후,
그나마 조심조심
예식을 마치고
연회장으로 들어서는데,
겨우겨우 버텨주던 구두 뒷굽이
홀라당 떨어져나갑니다.
차라리 잘 되었다
툭 차버리고 나니
이렇게 홀가분하고
개운했던 것을,
쩔뚝쩔뚝 뷔페를 오가며
묘한 흥을 감추지 못합니다,
간만에 마주한 사촌들의 모습이
참으로 반갑고 정겨워 보입니다.
연회장 내 하객들 모습 또한
축복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형제 간 사촌 간 오가는 술잔에
출렁출렁 정이 넘칩니다.
그러한 시간도 잠시잠깐
찐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명처럼 각자의 정해진 삶으로
서둘러 바삐 돌아갑니다.
치적치절 내린 봄비가
조금 전 형제애처럼
감미롭기만 합니다.
쩔뚝쩔뚝 걸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거립니다.
지하철 계단을 뒤뚱뒤뚱 내려
남은 한 짝 뒷굽마저
살며시 뜯어서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이젠 모드가 정상입니다.
눈높이만 쪼끔 낮아졌을 뿐,
주변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쩔뚝거리지도 않습니다.
황급히 뒷걸음질 치는
차창 밖 캄캄한 터널 속으로
벅찬 희열이 용솟음칩니다.
싱그러운 초록에
방울방울 빗방울이
잔잔한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흥건한 촉촉함이
흐뭇한 행복이며
감사입니다.
2018년 5월 12일
(성구 장가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