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맹렬히 군불을 지피며
기세등등하던 폭염이,
거부치 못할 청에 못 이겨
거짓 시늉을 하는 것처럼,
마지못한 듯 꼬리를 감춘 채
등 떠밀려 비를 부른다.
날궂이를 자초하여
비라도 맞아볼 요량으로,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서
산행 준비를 서두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살펴가며
동참을 유도해보지만,
제아무리 30년을 넘도록
살 부빔서 살았다고는 하나,
빗줄기 속에서 날궂이 라도 하고픈
견공님의 그 심사를,
왜 하필 산으로 가느냐는
순진무구하신 퇴깽이님께서
이 속내를 어이 알고
내 장단에 맞장구를 칠까?
7월 중턱 목마른 초록 잎
그 입술에 빗물 머금고,
우중산중에 홀로 선 초로 객
속옷까지 흠뻑 젖은 채,
운동화 속 발밑으로 전해지는
촉촉하고 신선한 산 촉감에,
고단한 초로의 일상으로부터
해맑은 영혼을 건진다.
젖은 옷깃 풀어헤친
가슴팍으로
진 운무가 성운처럼
간질이고 갈 때마다,
낯 설은 야릇함이
흥분을 부추기며
걸음을 들뜨게 하고,
모자 차양 양 끝에
방울방울 고였다
뚝뚝 떨어지는
유리알 같은 빗방울이,
짜릿한 희열로 벅차오르며
가슴을 설레게 한다.
속삭이듯 조잘조잘
한여름 갈증을 위로하고
끊임없이 추적추적
진초록 숲을 애무하며,
위로하듯 토닥토닥
고독한 영혼을 다독인다.
슬픈 듯 바람에 기댄 채
다소곳한 부드러움으로,
다급한 듯 바람을 밀치며
격렬한 몸부림으로,
굵어진 빗방울을
맨 몸으로 허락하고,
몰려오는 찬홈 여파에
온몸을 내맡기며,
아차산 팔각정에
황홀히 홀로서서,
쏟아져 내리는 운무 자락에
살며시 몸을 묻고,
소리 없이 드리운
어둠 자락을 밀치며,
저 멀리 깜박이는
도심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쫄딱 비 맞은
개 꼬라지를 하고 선채,
어중이 신선놀음에
날 저문 줄 모르노라.
2015년 7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