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아침 일찍 몰래 비밀스레
어딘가를 가는 딸아이를 불러 세워
어깨를 안아 다독이며 살며시 넘겨짚고,
새 해보며 담아왔던 밝고 신선한 기운과
아빠가 가진 모든 행운을 네게 몽땅 쏘겠으니
뭔지는 모르지만 네 자신을 믿고
소신껏 열정을 다 해보라는 말과 함께
기를 팍팍 불어넣고 살려
사뿐히 집을 나서게 한다.
퇴근 길,
오늘내일, 차일피일
보름여를 속아오다,
더 참으려니 약이 올라
수금 길에 나섰다가,
새파랗게 젊은 여 업주의
막가파 식 억지 요구에
뒤통수를 맞은 배신감으로
한바탕 설전을 치루고 나니,
견딜 수 없는 모멸과 분노가
뒷목이 뻐근토록 혈압을 올린다.
30년간 변함없이
한 우물만 파온 집념과 열정이
젖은 휴지조각처럼 풀이 죽어
길바닥에 나뒹굴고
찐한 회이감이 어둠과 함께
밀물처럼 밀려온다.
귀가 후,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다
출근길,
겨우 일어나 아침을 때우고
주차장을 서둘러 나오다
우지직하는 심상찮은 소리에
차를 멈추고 내려서 보니
얌전히 주차된 옆 차 옆 꼭지를
가차 없이 뭉개버렸다.
이런 된장!!~
재수에 옴 붙을!!~
설마설마 이럴 줄이야!!?~
아무리 눈 까집고 보면 볼수록
기죽고 석 죽는 벤츠500!!~,
후렌지 쓸고 범퍼 치고
라이트까지 갈아 잡쉈다.
눈앞이 온통 새하얗고
아찔한 현기증에 휘청거리다,
겨우 진정하고 정신을 차려
보험사에 연락해 사고 접수하고,
현장 조사까지 마치고 나서
아무리 안 안팎을 둘러봐도,
사람 마음 뒤숭숭하게
연락처 하나 없는 벤츠500!!~,
궁시렁 궁시렁 애먼 탓하다
와이퍼에 눌러 메모를 남기고,
후들거린 가슴으로
간신히 출근은 하였으나,
무슨 일인들 손에 잡혀
무슨 낙으로 오늘을 버틸까?
사람이라도 다쳤으면
어쩔뻔 했느냐며
다독이는 아내의 위로에,
그나마 잠시 마음을 돌려
진정을 해보려 애를 써보지만,
어젯밤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일상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틀린 것 같다며 실망하던 딸애가
들뜬 음성으로 아빠를 위로한다며
“아빠!!~”
“오늘 힘들었다며?”
“내가 기쁜 소식 전할게!!~”
“다 잊고 힘내!!~”
“나 대학원 면접 봤었는데, 오늘 합격통지 받았어!!~”
“잘했지? 다 아빠가 힘 준 덕분이잖아?”
“그러니까 아빠도 힘내고 기뻐해 줘!!~
“알았지?”
기쁨에 찬 딸아이의 음성에
모든 것을 다 잊고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퍼 부으며
아침 일을 까맣게 잊는다.
한참 힘들고 고단했을 아이한테
정말 그런 행운마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우울하고 지치고 힘이 빠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면서 천만 다행이고,
기쁘고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세상은,
삶은,
인생은,
항상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인가 보다!!~.
오늘은 퇴근시간을 앞당겨 일찍 집으로 들어가
내 가족과 함께 이 기쁨을 마음껏 즐기고 나누며,
딸아이 대학원 합격 파티로
벤츠500을 잊으리라.
2015년 2월 4일 입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