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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울 엄니의 한여름 끝자락

 

 

 

 

 

새벽길 달려서

친정집(?) 왔더니,

구순을 넘보시는

내 어머니,

이 한여름 끝자락을

누르고 앉으신 채

일 귀신이 들리신 것처럼,

토란대 더미 속에 묻히셔서

잠시도 일손을 멈추지 못하시고

가녀리신 몸을 꼼지락대십니다.

 

가까운 벗님들을

부르셨음인지?

품앗이를 삼으셨음인지?

 

서둘러 양손에

비닐봉지를 장갑처럼 끼고

정제칼을 챙겨든 채,

내 어머니 오가시는 대화 속으로

반가이 인사 올리며

살며시 끼어듭니다.

 

금방 환히 웃어주시는

그분들의 희미한

기억 저편에 있는 삶 속으로,

잠시잠깐의 멀고 긴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한 순간의 엷은 미소 뒤에

긴 한숨, 깊은 신음이,

순식간에 수 세월을

숨 가쁘게 넘나드신 후,

그래도 그 때가 좋으셨노라

회한의 미소를 짓습니다.

 

창고 한켠을 제집인양 차지한

낯 두꺼운 제비 한 쌍이,

재밌는 듯, 슬픈 듯 물끄러미

그러는 우릴 지켜보고,

벗기고 벗겨도 끝도 없을

울엄니 잡아 앉히실 토란대 순이,

넘세밭고랑 두렁마다

꼰지발을 선채로,

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듯

넌지시 고개를 빼들며 쳐다보고,

이방인처럼 낯선

사과나무의 잎 새 뒤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 열매의 풋풋함이,

마치 우연히 길을 가다

옛 연인을 본 것처럼,

화들짝 마음은 들뜨고

은근히 가슴이 설렙니다.

그리움 일깨우는 시간들이

이렇게 금방 한나절 가고,

뜨겁고 긴긴 하루해가

바삐 서산 몬당을 넘고 나니,

크고 밝은 둥근 달이

삼밭골 까끄막을 단숨에 차고 올라,

해 저문 고향 드넓은 들녘에

내리는 어둠을 살며시 거두며,

헤지고 시린 이내 가슴을

달래듯 감미롭게 비춰줍니다.

 

7월 백중을 코앞에 둔 달이

유난히 크고 둥글고 밝습니다.

나 어릴 적 백중날에

울 엄니께서 부쳐주시던,

그 때, 그 맛나고 감칠맛 나던

그 둥글고 큰 호박적 처럼~~~~

 

 

20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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