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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순응

 

 

 

 

 

 

바르고 정확함에 길들여진 내 안에

언젠가부터 낯 설은 또 다른 내가있다.

 

자꾸만 갈수록,

시작과 끝을 구분치 못하고

일머리를 뒤섞어 뒤죽박죽을 만들고,

어제와 그제를 긴가민가해하며

조금 전 생각을 까맣게 잊기도 한다.

옷맵시 몸맵시가 멋을 잃었고

자세와 폼 새는 이미 균형을 잃었다.

근육은 탄력을 잃고, 관절은 유연함을 잃고

생각은 빛을 잃고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신체 구조 곳곳이 성한 곳 없이

빈 수레처럼 삐거덕거리고

이따금씩 두통을 참지 못하고

심하게 머리를 가로젓기도 한다.

 

그에 삶은 세월을 먹으며

그 인생에 살을 찌우려 했건만

세월은 그 삶을 갉아먹으며

그 인생을 부식시켰던 것인가?

 

그렇게 스멀스멀 나를 차지한

낯 설은 내가 거북스럽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밀어낸

내가 두렵고 또한 가엾다.

그러는 나를 볼 때마다

울컥울컥 마음 서럽고,

어쩌지 못할 불안과 우울감에

불쑥불쑥 화가 치민다.

 

딸아이 손에 이끌려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들었건만,

머리는 더욱더 돌덩이처럼 무겁고

가슴은 뚫린 듯 허무하고,

마음은 더더욱 헝클어져

짜증스럽기만 하고 무의미하다.

 

낯 설은 나를 달래나 보자고

억지스럽게 봇짐을 챙겨,

지하철 속을 더듬더듬 나와

용마산 문전을 넘어서니,

울다 지쳐도 모자랄

매미소리마저 사라지고,

후텁지근하고 끈적한

깊은 정적이 진초록

여름 산을 짓누르고 있다.

 

터벅터벅 열기를 훔치며

아차산 몬당에 당도하니,

흐드러지게 활짝 웃던

망초꽃 마저 풀이 죽어

마른장마에 갈증을 못 이기고

꼴딱꼴딱 숨이 넘어간다.

 

애원하듯 체념하듯 속삭이듯,

낯 설은 내게 귓속말처럼

세월이 자신한테 이르고자 했던 것은

삶도 인생도 기쁨도 아픔도 아닌

순리를 따르라고!!~

순응을 배우라 하였노라고~~~~~~~~~~~~

 

일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마귀 한 쌍이 머리 위를 배회하며

조롱하듯 까악까악!!~ 

다독이듯 까악까악!!~

 

 

20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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