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은 한결같을 뿐이고,
세월 속에 인간은 그저 잠시 왔다 잠시 머물고 갈
뿐 일 것을, 세월을 나누고 구분지어 구지 의미를
부여 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쩌면
인간들만의 기억과 망각 사이를 손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극히 편의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 인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을 씌워 인간들만의
편리를 위한 한낱 숫자놀음 같은 것일지도 모를--------
끝없이 이어지는 순리 속에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그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교차하는 순간순간을
어떤 땐 더디 간다 안달을 부리고 또 어떤 땐 쉬이 간다
호들갑을 떨어댄다. 간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인간들만의
가는 세월 오는 시간 속에 묵은 것과 새 것을 나누고,
행복한 기억일랑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힘들었던 불편한 기억들일랑 쉬 잊고픈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놀음에 나 또한 은근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채,
이미 인생중반 반환점을 돌아선지 오래 전
그저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려온 삶이었건만,
딱히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손에 쥔 것 별거 없는
초로 또한 덩달아 들떠서 한 해 동안 아프고 힘든
기억일랑 쉬 털어내고 새 마음 새 소망을 염원 해 보겠다고
아내를 꼬득여 도심 인근 자그마한 야산에 올라 새 해
새 태양을 보겠노라 여명이 동트는 새벽길을 나선다.
어제 밤 잠들기 전 아내를 불러
“우리 낼 아침 일찍 용마산으로 새해 해맞이 갈까?”
잠시 생각하는듯하더니 이내
“그냥 우리끼리?”
“그러까!!~ 아이들도 다 외박일 거 같은 데!!~
“에~이 뭐!!~ 그럽시다!!”
라는 승낙을 얻었던 터라
혼자서 늦도록 TV에서 중계하는 보신각 종 소리를
듣고서도 한참 동안을 잠 못 이루다 잠깐 잠이 들었든가
싶었는데 흠칫 놀라 눈을 뜨고 보니 06시 30분이 아닌가?!
잠자는 아내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어 깨우며,
“각시!!~ 해보러 가게 언능 일어나소!!~”(06:30)
부스스 일어나는 아내가 더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몇 시나 됐는디 그러요?” 전자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해 뜰 시간이 몇 시다요?” 묻고는 아직은
이르다는 듯 여유를 부린다.
“일곱 시 사십오 분에 뜬다네!!~”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언능 준비 허소!!~”
먼저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아내를 재촉한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
예상보다는 날씨가 덜 추워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내의 손을 내 손 안에 감싸 쥐어 내 점퍼 주머니 속에 넣고
답십리 지하철역으로 종종걸음을 쳐간다.
한산한 지하철 역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
승강장에 도착하여 잠시 시간을 보니 약간 늦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살짝 스친다. 이내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을
밀어내며 컴컴한 어둠의 터널 속으로부터 열차가 도착하고,
텅텅 빈 좌석 한켠을 골라 나란히 차지하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분 좋게 활짝 웃는다.
군자역에서 내려 환승하기 위해 긴 이동로를 빠른
걸음으로 신속히 이동하자 고맙게도 기다렸다는 듯
7호선 열차가 플랫폼에 황급히 도착한다.
우린
“얼씨구 정초부터 뭔가 딱딱 잘 들어맞네!!~”
희색이 만면하여 환승 후 서로의 손을 꽉 마주잡고
뭔지 모를 좋은 예감에 흐뭇함을 만끽한다.
중곡역을 지나 용마산역에서 하차 길고 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지하철 역 출구를 빠져나와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심 골목을 지나
한적한 등산로 입구로 들어선다.
이내 용마산 초입에 이르러 등산모드로 전환하고
아무래도 해 오를 시간에 늦을 것 같은 불안감에
아내 손을 이끌며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주일이면 혼자서 오후 산행만을 고집 해오다
이른 아침 아내와 오붓이 산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색다른 기분으로 다가오고 새 해를 보리라는
기대에 다소 흥분과 설렘으로 가슴이 뿌듯해 옴을 느낀다.
시간이 좀 늦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기대와 달리 해맞이
등산객이 보기 힘들 정도로 뜸하다.
앞에서 손을 끌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쉬어가자 세우고
6부 능선쯤에서 잠시 뒤를 돌아 도심을 내려다본다.
희끗희끗 눈발이 남아있는 능선 아래 먼발치에
서서히 드러나는 건물 숲 사이로 자욱한 새벽안개가
짙게 드리워지고 그 사이로 차량 불빛이 지렁이 꿈틀거리듯
움직이며 크고 작은 불빛이 밤하늘 별빛처럼 깜박거린다.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도심의 야경을 깊은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어둠이 사라지고 불빛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며
빌딩 사이로 여명이 동트기 시작하는 도심은
새로운 역사를 일구기 위한 힘찬 태동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여태 한 번 느껴보지 못했던 신비스럽고 웅장한 도심의
꿈틀거림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아내의 어깨를 힘껏 감싸며
“어때?”
“멋있지?”
“모든 것이 감사하고 사랑스럽지 않아?”
“당신도!!~ 나도!!~ 아이들도!!~ 그리고 모두가 다!!??”
내게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는 아내가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며 뒤에서 아내의 엉덩이를
밀어 올리며 급경사구간을 오른다.
아내는 힘들게 그러지 말고 얼른 혼자 올라가 일출을 보고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된다며 나를 앞세우려한다.
“이 여보야!!~” 그럴 거였음 뭘 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쌍으로 이 고생을 해?“
“그렇게 보는 새 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다고?”
“해를 본대도 함께 해를 못 본대도 함께!!~”
“죽으나 사나 함께해야 할 사이가 당신과 내 사이가 아니겄는가?”
“힘들먼 또 여그서 좀 쉬었다 가면 되고!!~”
“이참에 새 해를 못 보더라도 또
내년 새해에 와서 보면 될 것잉깨!!~”
라고 허허 웃으며 허리춤을 당기자
“아녀여보~~ 갈만 한깨 언능 올라갑시다!!~”
휘적휘적 가파른 길을 부지런히 오른다.
어느새 아차산 몬당 근처에까지 오르자 수없는 인파가
산 몬당을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모두가 하나같이 동녘을 주시하며 웅성거리다
갑자기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마치 여태 우리 부부만을 기다리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우리가 정상에 도착 하자마자(7시 47분) 2014년 밝은
새해 새 태양이 그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녘 하늘을 붉디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붉은
열정으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밝고 둥근 빛 덩어리가
구름 한 자락을 살포시 깔고 치장을 한 채,
산을 힘껏 차고 올라 동녘에 찬란한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합장하고 절을 올리는 사람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함성을 지르며 소원을 말하는 사람들 등등,
온갖 사람들의 모든 소망을 다 들어주고도 남을 만큼
크고 둥글고 밝고 맑은 태양이 동녘으로부터 힘차게
솟구쳐 오르며 마침내 2014년의 태동이 서서히 시작된다.
아내의 손을 놓칠세라 힘껏 붙든 채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겨우겨우 서 그 모든 이가 염원하고 축원하고 소망하는
태양을 우리 둘만의 것인 냥 우러러 주시하며 기대와 설렘을 품는다.
딸아이의 건강 문제로 가슴 한켠 묵직한 근심 덩어리가
정밀 검사 후 별 큰 탈 없이 쉬 해소 될 수 있기를
소원하며---------
“각시!!~ 우리 올 한해도 아프지 말고 건강히, 조금 더
여유롭고 너그럽게 서로를 배려하며 아낌없이 맘껏
사랑함서 열심히 폼나게 살아갑시다!!~”
라며 어깨를 토닥거린다.
아내 또한 그윽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고마워요 당신!!~ 그리고 사랑해요!!~” 라며
그러다 아내는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주머니를
뒤적여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까서 내 입에 넣어주고
다시 한 알을 까서 자기 입에 넣고는 배시시 웃으며
날 빤히 바라본다.
밝고 붉게 상기된 아내의 얼굴에서 사랑과 기쁨을
서로 공감하고 아내가 넣어준 초콜릿을 입안에서 굴리며
달콤한 행복을 찐하게 가슴으로 느낀다.
뒤엉킨 사람들 틈을 어렵게 벗어나 아차산을 향해 걷는다.
말없이 그저 서로의 손을 굳게 마주잡은 채,
한참을 그렇게 맑고 포근한 공기를 들어 마시며 유쾌 상쾌한
기분으로 아차산 4보루에 도착할 쯤,
겨울 아침 산의 정적을 깨우며 헬기 한 대가 나타나더니
우리 부부가 넘어왔던 용마산 정상을 선회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일까 궁금함에 걸음을 멈추고 용마산 정상을
주시하는데 두 서너 바퀴를 더 선회한 후 한곳에
멈춰 정지한 채로 들것을 내려 보내고 나서 그 근처를
서너 바퀴 선회 비행을 하고 난 후 다시 멈춰있던
그 장소에서 들것을 끌어 올린 후 유유히 사라져간다.
누군가가 정초부터 산행 길에 쓸어졌거나 다쳤거나 하여
병원으로 이송 되어 감을 짐작하며,
부디 어느 누군가의 그 분이 그나마 별 탈 없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대성암에 도착하자
아내는 곧장 절 문 안으로 빨려들 듯 들어가고
난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한다.
아침운동에 익숙하진 않아 가볍게 준비운동을 마친 후,
조심스럽게 기구를 들어 올리자 금방 근육에 힘이 가해지며
활력이 솟음을 느낀다. 25분여 동안 운동을 마치고
절마당서 지켜보고 서 있는 아내를 손짓 해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나서 대성암 돌계단 아래 정중히 서 합장하고
오늘만큼은 더없는 간절함으로 삼배를 올린다.
내리막길을 서두르며 갑자기 몰려오는 허기에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입을 축이고 아내께 건네며
“배 안고파?”
“그러네!!~ 아침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가? 나두 허기가 드네!!~”
물병을 건네받으며 살포시 웃는 아내의 손을 이끌고
부지런히 아차산을 내려온다.
대공원 후문 버스 승강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각시!!~ 우리 집 앞 그 순대 해장국 집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 어때?”
아내역시 흡족한 표정으로
“저야 더없이 좋죠!!~ 굿이예요!!~”
우린 다정스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쑥 빼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아내의 손에 들린 버스카드를 보고
얼른 바지 주머니를 뒤져 버스카드를 찾는데, 아무리 더듬어도
카드의 흔적이 잡히지 않는다.
“어!!~ 어디 갔지?” 배낭을 벗어 놓고 상하의 주머니 속을 다
뒤집어 까고 배낭 속까지 온통 다 뒤졌건만 카드는 없다.
산행 중에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빼면서 어디선가
흘러 버렸던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도착하자 우린 얼른 아내 카드로
2인분 승차 후 나란히 좌석에 앉아 카드 분실을
확인하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버스가 집 앞에 도착하여 내리자마자 순댓국집을 향해 가며
카드 분실 신고를 서둘다 금방 식당 문을 들어서며
한산한 식당 홀을 둘러보다 가까운 식탁을 차지하고
마주보고 앉아 피식 웃으며
“이거 참 정초부터 손재수를 겪었네!!~”
“액땜이라 생각하고 우리 혜영이 병원 결과도
카드 잊어버린 것처럼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짝
잊어져 버릴 것이었음 좋겠네!!~”
아내도 이내 미소를 머금고는
“뭐 무슨 별일이야 있을라구요?”
주문 후 약간의 기다림 끝에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순댓국 해장국이 나오자 우린 얼른 수저를 들어
국물 맛을 음미한 후 후루룩 후루룩 허기를 채운다.
순대 한 알을 건져 아내 밥공기 뚜껑에 올려 놓아주며,
“이거 한 점 먹고 올 한해 건강하소!!~”
“아침 일찍 당신과 함께한 산행이 참 의미가 깊고 행복했네!!~”
“오늘 당신과 함께 맞이한 새해 태양이 우리 가족한테 분명
큰 축복과 행운을 주리라 믿고 열심히 살세!!~”
해맑은 눈으로 바라봐주는 아내의 표정에서
깊은 사랑과 행복과 존경을 읽는다.
2014년 신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