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지 모를 거리감을 방치하다
결국 예기치 못한 엉뚱한 것으로부터 사건이 터졌다.
치과에 간다는 아들 녀석의 말에 별 생각 없이
“웬 치과”라고 묻자 다분히 귀찮다는 듯
“이가 아프니까 치과에 가죠?”
“그것을 몰라서 묻는 거냐?”
“그럼 알면서 왜 묻는데요?”라니
분명 숨겨온 감정의 표출이다.
앉아 고개를 돌려 이야기하는 내 등 뒤에 추리닝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꼿꼿이 서 얼굴엔 잔뜩 분노를 머금고--------
반항이며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상상도 못했던 아들놈 행위에
나 또한 화를 참지 못하고 고성이 오간다.
예전 같지 않던 아들 모습이 순식간 스친다.
취업 후 아들 놈 회사가 궁금하여 이것저것 물으면
역력히 짜증스런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 대답은
다분히 수세적이고 때론 공세적 이었다.
은근슬쩍 아버지란 권위에 흠집을 내는가 하면 비아냥거릴 때도,
문짜를 보내면 곧장 기분 좋을 답문이 즉각 날아 왔었을 때에 비해
무반응 후 마지못해 오는 자조 섞인 답문,
“도대체 무슨 불만이 있어 요즘 태도가 그러느냐”는 말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어렵고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그런단다.
이 무슨 날 벼락이며 안면몰수 정면박치기라는 말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고 당혹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어쩌다 언제부터 이지경이 됐는지??!!~
숨이 훅 하고 막히며 피가 거꾸로 솟는 듯 머리가 터 질것 같다.
사랑스런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따금씩
아빠로서 아들한테 해 주었던 조언과 충고가
저토록 부담스럽고 불편했었다니 그동안 내가 저놈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좀 칭찬해 주고 힘을 실어주면 안되느냐”며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기어오를 듯 대드는 아들 녀석한테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내가 앞으로 네게 무슨 말인들 할 수 있겠느냐”며
그만두자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 맘대로 하시라”며 방문을 열고 제 방으로 올라간다.
순식간 벌어진 일에 당황에서 벗어나 사태 파악이 되자
치밀어 오른 화를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다.
어려서는 물론 군 제대 후 학교 졸업하고 얼마 전 까지
여지껏 살면서 저놈한테서 저토록 오만불손한 태도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터라
믿었던 대상으로부터 오는 배신감은 더 크고 아픈 법,
나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방문에 주먹질을 해대며 아들놈 방을 향해 육두문자를 날리다
끝내 더 이상 참아내질 못하고 발악 하듯이
아내의 붙잡음을 뿌리치고 버럭 밖으로 뛰쳐나간다.
분을 뿜어내듯 거친 숨을 내쉬며 무작정 차도를 걷는다.
경적소리에 겨우 인도로 올라서자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부정을 모르고 자란 나였기에 내 아이들한테는
언제나 필요한 자리에 든든하고 부족함 없는 사랑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믿음직스런 아빠이고 싶었었다.
내가 느꼈던 한이나 부족함을 주지 않기 위해 나름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가 되고자 열심히 한다고 살았건만,
딸아이한테도 아들 녀석한테도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아비가
되고 마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미치자
뜨거운 눈물이 봇물 터지 듯 흘러내린다.
세상을 살아내자면 어디 착하고 정직하게만 살아 갈 수가 있겠던가?
강한 아들이기를 원했던 것이 이 아비의 잘못이란 말인가?
다소곳이 순종하며 지혜로운 딸이길 바랐던 아비의 바람이
지나친 욕심이며 비단 나 혼자만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더란 말인가?
참으로 답답하고 통탄스러움에 가슴이 미어진다.
석 달 전 취업 후,
현 직장에 만족하지 말고 틈나는 대로 안전한 미래를 위한
착실한 준비를 하라 일렀다.
업무에 관계되는 전문 지식인은 물론 직장 선,후배 분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라 주문을 했었다.
신입사원이라고 누군가가 해 주기를 바라거나 기다리지 말고
미리 미리서 묻고 준비하라는 조언도 했었다.
맘 조려가며 어렵고 힘들게 취업했을 아들한테
칭찬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조언하고 충고하는 일에 더 치우쳤고,
사랑을 표현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가슴에 담아두고
은근히 혼자서 간직한 사랑이 더 크고 깊었으리라.
정처 없는 발걸음에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아버지라는 자존감이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얼마를 걸었는지 발가락이 얼얼하고 어깨가 굳은 듯 웅크려 든다.
주먹이 욱신거려서 손을 들고 보니 벗겨진 살갗에 피가 배어있다.
갑자기 추위가 엄습하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맨발에 슬리퍼, 추리닝 바지에 목티 차림
여지없는 넋 나간 사람이며 길 잃은 견공이다.
굴다리 건널목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우두커니 주변을 돌아다본다.
신호등 불빛이 괴물스런 초록 눈을 껌벅거리고
가로등불 밑에 웅크리고 서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기만 한데,
창백한 가로등 불빛은 살을 에이 듯 시리고
예년 같지 않은 한파는 혹독하리만큼 매몰차다.
황급히 건널목을 건너서 왔던 반대편 길을 되돌아 걷는다.
차분함을 되찾으며 다소 마음이 안정됨을 느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착하고 공손하기만 했던 아들 녀석이
정면에서 상기된 얼굴을 숨김없이 디밀며 아버지를
능멸하려고 했던 그 표정이 상기되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깊은 설움을 꿀꺽 삼킨다.
한 번도 속 썩을 일이 없었던 놈,
한 번도 아버지를 거역한 적이 없었던 녀석,
한 번도 미워해 본적이 없었던 아들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그 자식을 그리도 아프고 힘들게 했더란 말인가?
부정에 낯선 나였었기에 그토록 잘 해보고픈 아버지였었건만
한순간의 폭풍으로 걷잡을 수 없이
심한 자괴감속으로 빠져든다.
어둠과 깊은 정적 속에 쌓인 작은 방,
아내는 등을 돌리고 자리에 누운 채 죽은 듯이 말이 없고
온갖 생각 온갖 상상으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장승처럼 섰다가 한숨을 내쉬기도, 허망 없이 앉았다 일어서며
앓듯 신음소리를 내기도, 까만 밤은 속절없이 깊어만 가고,
만신창이가 된 가슴은 까만 숯덩이가 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자식 해할 부모 또한 어디 있겠는가?
밟히리라!!~
부서지리라!!~
기꺼이 믿고 다 내어 주리라!!~
아비가 쳐놓은 보호막으로 부터 아비가 내어주는 등을 딛고
그 아비의 굽이진 산을 넘어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저만의 세상,
아비의 산보다도 더 큰 산,
아비의 세상보다도 더 넓은 세상으로 굳게 나아가지 않겠는가?
괘씸하고 미운 감정, 분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사르르 눈 녹듯
사그라지며 마음 한 구석이 훤하게 밝아온다.
어느덧 새벽은 짙은 어둠을 밀어내고
창문에 가득 여명이 드리운다.
날이 밝는 대로 아들을 불러 앉히고
상처 난 그 놈 가슴을 들여다보리라.
내 마음의 깊은 상처야 소금을 뿌린 듯 쓰리고 아플지라도
아들 녀석 상처를 꿰매고 처매어 덧나지 않게 하리라.
언젠가 먼 훗날
이 아비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 내 사랑하는 아들의
눈에서 쏟아지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 놈한테 얼마나 큰 아픔이며 후회겠는가?
내 아버지께서는 최소한 내게 후회할 기회를
남겨 주시지 않으셨으니------------------------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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