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제법 쌀쌀한게 겨울 같으이!!
겨울은 시작인데 또 한 해는 저무는가!? 하루 또 하루가 세월의 바다를 이루는가 싶더니만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이 쉰을 훌쩍 앞질러 가듯 하네그려!!~ 잘 지내시는가 친구? 우리 소시쩍 겨울은 지금보단 엄청 추웠지 않았나 싶네만 배곯아 춥고 옷이 얇아 더 춥고, 하지만 마음만은 시방보다 훨씬 더 뜨겁고 진솔하며 정다웠지 않았었나 싶으이.
간밤에 바람 소리 휘파람을 불어 대면 여지없이 큰 또랑은 이쪽 저쪽이 막 얼어 붙어 운동장 처럼 넓디넓은 얼음판이 되곤했지. 유리처럼 맑은 얼음위를 보물찾기 하는듯이 숨 구멍을 찾아 다니며 골(?) 깨 먹던 생각하며, 그땐 참 얼마나 귀했던가 과일궤짝 생선 궤짝의 손바닥 만한 판자조각 일지라도, 온 동네를 후미진 틈새까지 몇날 몇일을 눈탱이 치다 겨우 간신히 몇 조각을 구해놓고 나서 장작나무 더미에서 곧은 장작으로 두개를 골라내어 무딘 낫,칼로 사다리꼴로 깎고 다듦은 후 쌍전붓대 철조망 돌로 찍어 끊어내어 외눈질로 줄 잡아가며 곧게 펴서 사다리꼴 각목에 코를 걸고 단단히 당기고 덧대 레일 처럼 고정하고 변변찮은 톱질에 어설픈 망치질로 어렵사리 쓰껫트 맹글어 신주단지 다루듯 마루 밑에 모셔두고 이쭉꿀로 줄달음쳐 새미골을 넘나들며 구석구석을 살핀 후 제일 곧고 긴 소나무를 내 것 인냥 골라잡아 들킬세라 살금살금 톱질하여 베어와서 한쪽 끝에 못을 박고 송곳처럼 끝을 갈아 채(발) 만들어 손에 잡고 쓰껫트 상판 판자 사이로 쑤욱 꿰어 들처 메면 발걸음도 흥겨워서 절로 신나 내 달렸지. 얼음판 위에 깔고앉아 있는 힘껏 채질을 해 재키면 빨래터 앞에서 금방 복송밭까징 미끄러져 갔었는뎅!! 한발(외발) 쓰껫트 타는 성아들은 또 얼마나 멋지고 부러웠던지? 얇게 언 얼음판 위를 손살같이 지치고 가면 '짜자자자작" 하면서 얼음 금가는 가슴 써늘한 소리며 고무다리 처럼 굴곡이 지는 곳은 그 얼마나 스릴 넘쳤던가 말일쎄!!~
점심 때 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우리의 호프 만호성은 어땠는가? 메질,톱질,짱돌질로 얼음판을 짤라내서 얼음배를 만들어 장대들고 설쳐대며 자유 자재로 노 저어 그 광활한 회보를 지맘대로 항해하지 않았던가? 겨우겨우 사정해서 얼음배 한번 올라타고 나면 세상이 날 향해 다가오며 술 취한듯 어지러웠었지. 막판 얼음이 녹아 군데군데 금이가고 조각조각 갈라져서 조각배 처럼 흩어지면 조각난 얼음 위에 한 둘씩 나뉘어져 어떻게든 물에 안 젖고 살아나와 보겠다고 밀고 당기며 동동구르고 안간힘을 써 보다가 결국엔 너나나나 물속으로 퐁당했지. 새 빨갛게 언 발 종종걸음 치며 검불 모아 불 피워서 양말 신발 말리다가 양말엔 불구녕이 송송하고 먹고무신 타는 냄새에 회보가 술렁했지. 대충대충 말려 신고 해 떨어지기 전에 달음질 쳐 온 가족 둘러앉은 밥상 머리에 당도하여 힐끗거리며 앉기 무섭게 웬 불냄새 웬 구무탄 내 라시며 한눈에 알아보신 우리 어머니 "너 이눔 인자부터 맨발로 겨울 나라"시며 치켜뜨신 눈 하시고 밥 그릇을 밀어 주셨지. 겁에 질린 눈 내리깔고 머리 조아려 가며 집 채 만한 밥덩이를 입속으로 밀어넣고 무시짐치 까지 한입 물어 한몫에 우물대면 볼은 터질락 말락 눈깔은 튀 나올까 말까!!?? 볼이야 터지든 말든 눈깔이야 튀나오든 말든 연신 입안으로 숫가락 삽질을 해댔었지. 꽁보리 밥에 단 한가지 반찬 무시짐치 뿐 이지만 그 맛은 어찌 그리도 달고 맛났던가? 요즘 아이들은 토옹 뭘 먹지들 않아 걱정이란 말을 들을 때면 차암 세상 엄청 좋아졌다 싶으이. 않 그렇던가 친구? 먹거리는 넘쳐나고 나댐은 적으니 께적께적 먹은것이 그나마 뱃속에 기름끼만 잔뜩 고여 비짓덩이만 쌓인게지!! 고럼!!~ 하하하!!~
아마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이맘 때 쯤이 되면 이쭉꿀 새미골 시용골 안뜰 할것 없이 노루 토끼를 비롯한 온갖 들,산 짐승들은 초 비상사태에 돌입하여 초 긴장속 뜬 눈으로 우리들 발걸음에 귀 세워 저울질 하며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경계하지 않았겠나 싶으이. 눈 오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것 없이 작대기 하나씩을 챙겨들고 당산 앞으로 모여 들었지. 작전이랄 것도 없지만 성아들이 하는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하얗게 눈 덮힌 산속을 그 놈들의 흔적을 찾아 온 산을 훑고 다녔지. 그러다 어느 쪽으로 부터 "토끼다~" 하고 외치는 소가 들리는가 싶으면 그 때 부터 그 놈들과 우리들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사생결단의 한판승부가 시작 된 셈!! 언젠가 한번 쫓기고 쫓기다 결국 덜미를 잡힌 토선생의 배를 갈랐을 때 간이 온통 흐믈흐물 형체가 없었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친구는 기억하는가? 얼마나 다급하게 쫓고 쫓겼으면 간이 다 녹았을까 말일쎄 하하하!!~ "뽀빠이 or 라면땅 팀" & "국물팀"이 뭔줄은 기억 하는가?
지금 애들처럼 혼자하는 놀일랑은 재미는 커녕 지루하기 이를데 없지 싶은데도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혼자 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것 아닌가 싶으이. 하나씩만 낳았으니 집에서는 물론이고, 하는 짓이나 노는 방식을 보면 차암 희한하고 용치 않던가 말일쎄!! 우린 어땠었나? 아마 하루만 집에 묶어 뒀었으면 낚시바늘 물고 묻으로 잡혀 나온 붕어새끼 파닥거리듯 했을걸세. 딱지나 못치기 정도만 하려해도 최소한 서너명의 친구가 있어야 했고, 단방구나 깡통차기나 좃보(?) 쯤을 할라치면 거의 이~삼십명은 족해야 했었거늘 항상 인원은 부족함이 없었지 않았던가? 권투할때 지르는 쨉소리 못지않게 못치기 할때 팔 휘두르며 바람 가르는 소리를 기억하는가? 하하하!~ 모르긴 해도 아마 똥섭이네 형아 호섭이 성이 젤 파워 풀 했지 싶고, 만영이 창영이 형제의 딱지치는 폼은 지금 생각 해도 일품 이었지 싶네그려. 그때 그래도 젤 탐내 하던 못은 대목수가(家)에 길봉이의 크고 곧은 새 못이 단연 인기 짱이었고, 단방구나 찾기(?)놀이의 최대 은신처는 봉택이 성님 집이나 방앗간 용택이네 집 중에 순위가 왔다갔다 했지 싶네, 지금은 회관 창고 자리인 공터가 못 치기나 딱지치기의 좋은 놀이터가 되었고 그 앞으로 세모 둠벙이 당산 한쪽과 신장로에 접해있어 신나는 스껫트장이 돼 주었으며 좃보장은 당산도 좋았지만 복송밭 용복이 성집이면 마춤이 아니었던가 기억하네. 성안이네 아버지 께서 만드신 참연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날았었지. 그 높고 맑고 푸른 하늘에 매 한마리가 먹이를 찾아 비행하듯 했으니 연줄을 감은 자새는 또 어땠었나? 우리들 네발 자새와는 차원부터 다르지 않았던가? 인택이 놈이 맹글어서 띄운 가우리연은 차암 그 꼬리가 길기도 했으며 나는 폼새도 오두방정을 떨듯했지. 크크크!!~ 그렇지 않은가? 높은 논 뚝이나 어덕 풀섶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불질러 놓고 소방대 놀이 하던일, 언젠가는 불놀이 하다 계순이네집 논 짚벼늘 태워먹고 도망다니다 결국은 줄줄이 엮겨 혼줄이 났던 일 하며, 그렇게 쌓은 소방 실력으로 소화기 보다 훨씬 탁월한 새깽이 꺾어들고 산 언덕에 불 지른 후 일정시간(수분)지나 불길이 웬만큼 타오르기 시작 할때 쯤이면 일제히 "시~작"이라고 외치며 순식간에 불길을 제압했던 강도 높은 훈련은 그야말로 둘도없는 스릴넘치는 놀이였지. 그때 이미 벌써 탁월한 능력을 선 보였던 우리의 친구 희성이는 지금 어떠한가? 직급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서울있는 소방대에서 꽤 높은 소방관님이 됐으니 그때 그 놀이가 결코 뻘짓만은 아니었음이 입증된 셈 아닌가 말일쎄.
요즘 바쁘게 돌아가며 요동치는 세태를 보면 참으로 기이하고 별스럽지 않던가? 내 자식은 특별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일부 이기적인 힘 쎄고 능력있는 위대한(?)부모들의 만용과, 과학과 문명과 물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혼자하는 놀이와 게임과 그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 그 문화를 충족시킬 상품과 상술이 난무하게 되다 보니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벽 속에 스스로 갇혀버려 마음은 병들고 의식은 썩어가는 것 같은, 나가서 어울리며 사회성을 키워야 할 옛 우리들 모습을 한 현대의 어린 양들은 밤 낮 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기술을 쌓고 시험치는 연습을 하며 경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꽃망울이 떨어져 버리기도 하고 어른들이 쳐 놓은 그물 안에 갖혀 혼자서 고립되어 시들어 버리기도 하며 어렵사리 마침내 성인이 되고나면 힘들고 불편한건 털 끝 만큼도 하기 싫어하고, 내 아닌 타인의 어려움에 스스로 다가가 수고 할 가치나 배려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 하는 그렇지만 자기 앞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의 천륜 마저도 기꺼이 져 버리는 냉혹함과 엇 나가버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한 현실에 가족관 부부관은 물론 인생관이나 삶의 가치관 까지 흔들리는 정체성 앞에 사람이 사람을 대하기가 두려운 생각이 들고 인간성 인간미가 그 의미를 잃어 인심은 거칠고 야박하며 정과 사랑이 점점 메말라 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지 않던가 말일쎄. 이따금씩 우릴 놀라게 하는 뉴스꺼리에 왕따며, 패륜 범죄며, 살인이며 사기,치정,자살 등을 접할 때면 옛날에도 이랬었는가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허이. 이대로 몇 세대만 지나고 나면 삼춘 이모 고모는 물론 4촌 까지가 몽땅 국어사전 속에서 사라져갈 판이니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이. 항상 헐벗고 배 고프긴 했어도 또 애쓰며 특별하게 교육받은 일은 없었어도 부모님과 형제, 친척이나 이웃,친구나 주변을 보고 느끼고 섞이며 다양한 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법을 자연스레 체험하며 사랑을 배우고 나눔을 익히며 배려하는 미덕을 쌓고 서로가 우리들 모두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 처럼 우리들 모두의 가족을 내 가족인양 여기며 마음을 섞고 부대껴 가며 벽 없고 허물없이 살았건만 꽉 잠겨 닫힌 저 철재 대문 철옹성 같이 드 높은 저 벽 울타리, 그 속에 스스로 갇혀 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 친구여 너무나 가엾지 아니한가? 옛날 우리만한 지금의 저 아이들은 우리처럼 그런 추억 상상이나 되겠는가 말일쎄? 내가 먼저 선뜻 다가 가기에도 상대방이 내게로 선뜻 다가올 시에도 덜컥 겁부터 나는 이 서글픈 현실에서------------------------------------
생각이 나시는가? 그때 그 시절이?
친구야!!~ 그 시절이 그립지 아니한가?
그래도 지금보단 그 시절이 훨 좋았던게 맞지않은가 말일쎄!!??
자네가 있어서 내 마음이 흐뭇하고 소시쩍 나누어 가진 그 추억이 우리에게 있으니 항상 그립고, 언제고 마음 내키면 달려가 만날 수 있으니 이 어찌 아니 행복하며 이 모든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건강하다 자만하지 말고 항상 꾸준하게 건강관리 잘 하여 될 수 있으면 주량은 두어 잔만 줄여서 오래도록 변치않고 지금 처럼만 그저 너무 짧지않고 그렇다고 너무 길지도 않게 이 처럼 늘 함께했음 좋겠으이!!~ 자넨 아시는가 이 맘을? 잘 있으시게나 친구!!~
2007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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