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이슬을 머금은 듯한 풀벌레 소리,
그 수를 헤아릴 수 조차도 없을 만큼 엄청난
배고픈 참새 떼들의 시끌벅적한 소란에
이내 잠에서 깨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살며시 일어나 가벼운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화 끈을 지그시 땡겨서 맨 후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온다.
밤늦은 시간까지 정담을 나누며 한잔 두 잔을
흘려 넘긴 술이 과하다 싶었는데도
몸은 가뿐하고 정신은 맑고 투명하다.
이번만큼은 왠지 참으로 오랜만에 와보는 듯한
새롭고 신선한 시골 풍경이 정겹고 여유롭다.
당산 안쪽 뒷뚱산에 도토리, 소나무 무성하여
이맘때쯤이면 산이 닳도록 오르락내리락 대며
도토리 주워 모으던 곳이었건만,
지금은 온 언덕이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이젠 참새들만의 지상낙원처럼 참새들의
요란 벅적한 함성이 농부들 가슴에 한
시름을 부채질 하는 듯 하고,
집 앞에 펼쳐진 초가을 색 띈 풍성한
나락 논엔 완연히 드러난 나락 모가지에
잡티처럼 붙은 나락 꽃이 이슬을 머금고,
논두렁 두렁마다 탐스럽게 달린 콩깍지를
하트 모양을 한 진초록 무성한 잎이 하늘을
가리고 서, 넓게 펼쳐진 나락 논 사이를
줄줄이 칸칸이 질서 정연한 칸을 나누고 있으며,
복송밭 뚝방 큰또랑 가상에는 무성히 자란
잡목과 잡초가 마치 야산 한 모퉁이를 연상케 한다.
심호흡을 하며 몸을 풀고 난 후 야산 모습을
하고 있는 방천길을 따라 숨을 고르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아득한 옛날 입대 일 년 전부터
체력을 키우겠노라 다짐하고
매일을 왕복해서 마라톤을 하며
끈기를 키웠던 곳.
소싯적 추억이 구석구석에 묻은 복송밭ㅡ
보록꾸(?) 벽돌 기왓장에 물 뿌리고 뒤집고 옮겨 쌓는
수고를 하고나면 복송나무 밑에 떨어진 풋 복송을
주워갈 특권을 얻어 작두새미로 물 퍼 올려 풋복송
쓱쓱 닦아 행여 누가 달랠세라 뒤돌아 감추고서
우걱거리며 마냥 신나고 즐거워했던
그 추억의 복송 밭이 이젠 덩그러니 건축 가설 재를
가득 담은 창고로서의 옷을 갈아입은 지
이미 오래 전이고, 한여름 야심을 틈타 특수부대
침투, 습격 훈련보다도 훨씬 더 강도 쎄고 긴박했던
서만밭 오이, 가지 서리 작전은
또 얼마나 스릴 넘치고 가슴 퉁탕거리던 놀이였던가?
빨개 벗은 알몸으로 풋꼬추를 딸랑거리며 그 넓은
큰 또랑을 소리 소문 없이 도하할시
굽이치는 파도에 또랑 물 퍼먹어가며 간신히
건네고 나면 어찌 그리도 숨은 가프고 가슴은
조마조마 했던지,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은폐 엄폐를
거듭하며 넓다란 갱본을 높은 포복 낮 포복으로 가로질러
서만밭 밭고랑 둑 바짝 밑에 다다르면 대장의 작전개시와
함께 가르치는 손끝에 따라 방향을 정하고, 온 서만 밭을
초토화 시키며 오이, 가지, 땅콩 고구마 등등을 찾기에
밤새는 줄 몰랐었던ㅡ, 사전에 약속해 둔 작전지시에 따라
깽본 한가운데로 재집결을 한 후, 각자 노획물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내려놓고 나면 대장이 다시
분배해주는 자기 몫에 눈을 번득이며 좌우를 곁눈질 하다
재빨리 큼직한 놈으로 하나를 불쑥 골라
맨 몸 배에 슥슥 문질러 닦은 후 호기 있게 크게
한입 뚜득 베어 물고 터질 듯한 볼때기를 우걱대면
그 당시 그 풋것들은 얼마나 달고 맛났었으며,
용감무쌍한 사내로써의 얼마나 가슴 벅찬
자존감(?)이었으며 얼마나 뿌듯한 성취감(?)이었든가?
그리고 그때 그 서만밭 모기 떼 들은 왜
그리도 사납고 모질었던지!?
덕분에 난 군 생활을 11사단 수색대대에 차출된 후
사단 수색대대 작전과에 배속되어 굴지리 유격장
교육계까지 휩쓸었으니 그야말로 그때 그 서만밭
농작물 서리 작전은 내게 있어 가장 의미 깊고
유효 적절 했던 실전 경험이 됐던 셈------
ㅋㅋㅋ!~ㅎㅎㅎㅎㅎ!!~
(서만밭을 일구고 계셨던 그때 그 시절
아버지 어머님들께 이제야 머리 숙여 심심한
사죄를 드리며 부디 지난일 덮어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그러했던 그 추억의 서만밭은 이제 그 자취마저
사라져 버리고 잡초잡목 무성한 깨굴창으로,
생활 및 축산 오폐수로 오염된 개천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차츰 숨이 차오르며 복송밭 입구에 다다르니
창고지기 견공 한마리가 질겁하며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릉 대며 내 뒤를 쫓아온다.
하도 사납게 굴어 돌멩이를 집어든 척 하고
휙 돌아서니 깨갱하며 물러서면서도
돌아갈 기색은 전혀 없다.
뚝방 잔디 위 인적의 오간 흔적으로 인해
평행선을 한 두 길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길게 앞으로 뻗어나 있다.
뚝방 양쪽 길에 노란 나비가 앉아있는 듯 한
달맞이꽃이 환한 미소를 지며 웃는다.
해가 뜨면 꽃잎을 접어야 하는 슬픔을 간직한
애달픈 미소련가? 소복을 한 여인의 아름다움처럼
희고 깨끗한 박꽃도 창백한 미소를 띄며
언제쯤 해가 솟을까 하는 두려움을 숨긴 채
하얀 미소를 짓는다.
무성한 잡목사이로 개복송 나무가 지 몸에 달린
개복송을 달랑이며 잎을 흔들고
예전 같았으면 벌써 손을 타서 언놈의 입맛을
돋구고도 모자랐을 일이건만,
이슬 묻은 몸을 파르르 떨며 지 몸속 깊이 간직한
달콤한 꿀을 어느 누구든 퍼 가지라는 듯
진노랑 호박 꽃잎자락을 마음껏 벌리고 서서
부지런 떠는 벌 나비를 불러들인다.
멀리 물 가운데서 목을 길게 빼고
꼰지배기를 선 채로 먹이를 찾던 두루미 한 마리가
놀란 듯 황급하게 물을 차고 올라 날개를 치며
꽁무니를 뺀다. 돌멩이를 피해 이리 저리 교차하며
뛰다보니 운동화 밑바닥으로 이슬이 촉촉이 젖어 든다.
감촉이 너무나 신선하고 상쾌하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며 땀이 흥건하게
가슴과 등을 타고 내린다.
이른 아침 농약을 치는 부지런한 농부가 보인다.
경운기 소리마저 정겹고 경쾌하다.
대산리 마을 진입 농로를 지나 축사 몇 동이 있는
대략 여기쯤이 옛날 쌍 전붓대가 있었던
그 자리 인듯하다.
보다 깊고 맑은 물에서 멱을 감을 욕심으로
여기까지 와 수영을 하곤 했었는데,
새로 난 자동차 전용 도로로 인하여 그런 흔적을
이젠 찾아 볼 수 없음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혹 바쁜 사람들의 편의만을 쫓으며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잊고 포기하며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듦은 나 혼자만의 속 좁은 생각일까?
뚝방 길이 자동차 전용 도로로 인하여 끊어지는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며 방향을 돌려세운다.
속도를 유지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달린다.
차츰 숨이 골라지며 몸이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다.
30여분을 일정한 속도로 달린 끝에 본가에 도착해
마무리 운동을 마치고 흠뻑 땀에 젖은 몸을 샤워 한 후
형님의 생신 상 앞에 앉아 생신 축하와 함께
딸애가 준비해온 선물을 드리며 오랜만에 두 조카와
형님 내외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한 밥상에서
오붓한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 서둘러 어제 사서 두었던 막걸리 두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챙겨들고 본가에서 훤히
올려다 보이는 아버님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절을 올리며, 형님 어머님 누님 동생네와 아울러
우리가족 모두의 안녕과 평안을 간절하게
빌고 일어나 산소를 내려오기 무섭게 바삐
처가로 향한다.
시골만 오면 난 바빠진다.
본가와 처가를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일거리를 찾는다.
형님과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바쁜 일상으로 미쳐 손이 가지 못 하신
일거리를 찾아 이것저것 만지고 나면
마음이 흐뭇하고 즐거운 맘이 쏠쏠해서다.
그랬던 게 요즘엔 그마져도 영 몸이 따라주질
않은 것 같다. 왠지 자꾸만 어설프고~ 귀찮고~
어젯밤 늦도록 이야기하며 술을 들이켰던
동서와 처남들 모습은 둔하고 느릿한데
장모님을 비롯하신 처남댁들 처제 그리고
아내의 일손은 분주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같은 한날 형님의 생신이자 장인어른의
생신이라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희한한 일이 아닌가싶다.
잠시 후 생신 상 케잌에 불을 댕기고
고만고만한 12명의 처조카들이 생신 축가와 함께
할아버지께 각자의 덕담을 드리고, 듣는 중에
아이들의 재롱이 웃음꽃이 되어
유쾌한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간다.
그도 잠시 딸아이의 바쁜 일정으로
남원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울 행 버스표를 사서 손에 쥐어주고
목재 몇 개와 썬라이트를 구입하여 처가로
바쁘게 돌아와 바깥부엌 처마를 고치고 나니
시간이 벌써 오후 세 네 시를 향해간다.
태울 듯 열을 뿜던 날씨가 늦은 오후 무렵이 되니
구례읍 오산 하늘부터 먹구름이 잔뜩 몰려든다.
형님께서는 아까부터 잎짚무늬 마름병이 번지고 있어
큰 피해가 우려 된다 시며 안절부절
하늘만 살피신지 오래 전이시다.
난 "뭐 잠깐 스쳐갈 소나기 일 텐데
온다한들 얼마나 비가 오겠느냐"고
산동 쪽으로 비구름이 몰려가야 큰비가
오는 게 아니냐고 아는 체를 하며
서둘러 얼른 끝내고 들어오자고 청했다.
한참을 더 머뭇거리던 형님께서 형수와 조카까지
불러내시더니 농약치기가 좀 사나운 논이니
일손 많을 때 해치우자고 하시며 경운기를 사르신다.
옷을 갈아입고 고무장화와 비옷 바지로
중무장을 하고 자전거를 비벼 타고서
경운기 꽁무니를 따라 논으로 향한다.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에 신경이 갔지만
뭐 어쩌랴 싶어 급한 마음으로 논머리에 도착하여
통에 급히 물을 채우고 농약을 희석한 후
형님은 분무 건을 들고 난 호스를 목에 둘러 잡고
벼논 속을 이 잡듯 하며 농약을 쳐나간다.
"여기도 그렇다" "저기도 그렇다"를 연발하시며
큰일이라고 하시는 형님 모습에 정말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하는 맘뿐인데 잠시잠깐 사이
한 구간을 나갔다 되돌아오니 금시 끝이 나고 만다.
거의 끝이 나서 논두렁을 다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잔뜩 찌푸린 시어머니 상 을 하고 있던 날씨가
투툭 하고 빗방울을 뿌리는가 싶더니 결국엔
진회색 먹구름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 치 듯
굵고 줄기찬 빗줄기를 사정없이 내리쏟아 붓는다.
이런 젠장할!!~ 이런 낭패를 봤나?~
이런 허탈함이 있을 수 있는가?
게으른 놈 놀기 좋을만하게 굴던 날씨가 결국엔
"그놈의 꿩이 봄내 헛일(?)했다"하던 보리밭 매던
한 아낙의 넋두리처럼 그런 꿩 꼴이 되고 말았으니
형님 마음은 오죽했으랴. 미안한 마음에 형님을
우스갯소리로 위로하고 어차피 시작한 일이고
희석해서 남은 약도 있고 하니 계획대로 해치우자고
뜻을 모으고 난 다음 다른 논(시용골)으로 향했다.
금방 언제 비가 왔지 싶게 쨍한 날씨가 약을 올리는 듯
해서 서로를 쳐다보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린 후,
나머지 구간에 농약 치는 일을 계속한다.
오락가락 하는 비에 개의치 않고 농약살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훑고 간다.
죄스러움과 고마움, 미안함과 안타까움,
가슴 뜨거운 형제애와 뭉클한 존경스러움 등등,----
한치 앞을 못 내다보면서도 항상 서두르고
걱정하고 애태우고 탓하고 원망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우리들 모두의 거울을 보듯 닮은 삶!
흠뻑 젖어 생쥐 꼴을 하고 본가를 들어오니
연세 높으신 어머니께서 통닭을 주문하시고
안줏감을 만드셔서 술상을 봐 놓으셨다.
홀몸으로 4자매를 키우시며 우리형제 마음을
어련히 뚫어보셨을 우리들의 어머니!
애쓴 맘들 상할까봐서 술상을
차려 내어주심이 분명하다.
얼마 전만 하셔도 서너 잔은 거뜬하셨을 어머니께
반잔을 채워서 올리고 건강상 금주를 해야만 할
형님께도 한잔을 권해드리고 나서 시골 생활에
농사까지 지어가시며 어머님 모시고 열심히 사시는
형수님께도 한잔 권해드리고 나니 형님께서
내 잔에 가득 술을 채워 주신다.
두 손으로 받들어 단숨에 쭈욱 빨아 들이키니
향긋한 솔 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안타까움만
가득한 마음이 금방 눈 녹듯 사라진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잘 했다 한들 항상
백점만점을 받을 수만은 없듯이, 삶 자체도
언제나 100% 적중하며 항상 예상 예측하는 대로
잘하고 살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느냐고
그래도 오늘은 최선을 다 해보지 않았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형과 형수를 위로해 본다.
술상을 물리고 처가를 다시 오니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을 갔던 동서와 처남들이 역시나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들 와서
고기 굽기에 정신들이 없다.
나무젓가락을 챙겨들고 슬쩍 끼어들어
노릇노릇 잘 익은 목살 한 점을 낚궈 채서
쐬주 잔을 넘본다. 눈치 빠른 동서가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물 컵 잔에 거하게 잔을 채워준다.
처남들은 늦게 합류한 날 보더니
매형이랑 함께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역시 가족이라 함은 이러해서 좋은가 보다.
고향이란 이런 느낌이 있어서 또한 좋고,
잊고 살아온 세월의 한켠에 하얗게 세월 먼지 묻은
추억들이 툴툴 먼지를 털어내며 새록새록 떠올라
세월을 거슬러감이 더더욱 좋은 것인가 싶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찾아와 마음을 부빌 수 있고
정서와 마음과 가슴이 닮은 사람들을 보며
삶을 이야기하고 배우며 느끼고 거듭날 수 있는 곳ㅡ
모든 사람들의 가족처럼!
모든 사람들의 고향처럼!
그래서 더 귀하고 그립고 소중한 곳이리라.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밤이 깊어지면서
광주로 광양으로 아쉬운 인사말을 뒤로 남긴 채
한 가족 두 가족이 각자의 삶을 향해 떠나가고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어간다.
본가와 처가에서 챙겨주신 정겨운 선물들을
꾸러미 꾸러미보따리 챙겨서 메고,
어둠이 짙게 내린 밤길에 내 삶이 숨 쉬고 있는
현장을 향해 힘찬 재도약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어느새 먹구름은 걷히고 깊고 넓은 검푸른 하늘에
하나 둘 별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2%부족한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빵빵하게
충전된 내 가슴을 훤히 들여다본다.
내가 이 세상에 있음이 행운이고,
사랑스런 가족이 있어 내 삶이 행복하고,
언제나 그리운 내 고향이 있어
우리삶이 흐뭇하지 아니한가?
형이여! 친구여!! 아우여!!??
2007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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