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봄인데도
꽃은 곱고
빼앗긴 꽃 천지에도
봄날은 간다.
봄바람은
잠시를 못 참고
석촌호수 변
만개한 벚꽃잎에
간지럼을 태우며
꽃비를 흩뿌리고,
봄은 또 이렇게
습관처럼
세월 등살에
휘둘림을 당하면서도
한치도 빈틈없이
정해진 궤도 위를
그칠 줄 모르고
오고 갈 뿐,
오가는 봄 속에
생존하는 모든 것들은
반복의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삶과 인생사 또한
휘둘린 세월 앞에
그저 덧없고
한없이 무상하기만 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깨달을만한 나이,
환갑 진갑 고개를
훌쩍 다 넘어
이젠 엊그제 지난 일도
긴가민가한 고즈넉한
나이에 즈음,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처 없는 방랑길
위에 홀연히 선 채,
코로나19에
뭉텅 빼앗긴
이 허망한 봄에도
예전의 그때처럼
애처로운 그 이름을
못내
지워버리지 못한 채
또다시 용케
기억해 냅니다.
세월이 깊을수록
새록새록 기억되는 이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못내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 설움부터 복받쳐
명치끝이 아려오는
서글픈 그 이름
#희순!!~
37년 여 까마득한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
유신정권이 몰락하고
또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서기 일보 직전,
그 당시
계엄령 선포에 의한
불안 시국을 정화한다는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전국 각지 군부대에
삼청교육대를 급조하여
전과자나 부랑자 등
애먼 민간인들까지 대상으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사회정화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구금 및 구타 폭행을 자행하며
인권유린과 가혹행위를
정당화하던 암울한 시기,
홍천군 북방면
어느 벽촌마을 깊숙한
일명 11사단 유격장이라는
곳에서도 예외 없이,
예나 지금이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이가 갈리고 오금이 저린다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삼청교육대가 엄존하며
국가 폭력이 버젓이 난무하던
그 역사적 현장으로부터의
진입로 1Km쯤 전방
마을 중간 어귀,
삼청교육대의 외곽 경계근무를
지원키 위하여 아담한 마을 분교
운동장 안팎에 육중한 장갑차를
2대씩이나, 각각 M60 기관총까지
거치시켜 그 위용을 과시한 채,
위협적이고 전시적인 분위기를
유발케 한 후, 진입로 주변 요소요소
거점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간 경계근무 및 야간 매복을
번갈아 서며, 야전 상황을 전개하는
살벌한 역사적 현장 속으로
살며시 시간 이동을 감행해 본다.
한여름 땡볕이 열기를 발산하는
정오 무렵, 야전 막사가 운집한
연병장 진입로 입구,
학교 정문 위병초소로부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곧,
지역주민으로부터
의료지원 요청이 있는데
어떡하느냐는 근무병의
연락을 접수하고,
재빨리 의무관님을 호출하며
구급낭을 챙겨
위병소로 나가서 보니,
이웃 마을 주민이라고 하시는
어르신 한 분께서
공사장에서 일하시다 손을 다치셔
급히 병원으로 가려던 중,
병원은 멀고 상황이 위중하여
혹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오게 됐다고 하시며,
무슨 큰 죄라도 지으신 것처럼
불안에 떠시는 모습으로
잔뜩 기가 질리신 채,
안절부절못하시는 어르신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어르신께 우선
안정을 취하시도록 유도하며
그나마 편함 직한 자리를 물색해
편히 앉으시게 하고
팔에 칭칭 감긴 흙이 잔뜩 묻은
수건을 조심조심 풀어내자,
엄지 검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이
거의 으스러지다시피 찢기고
으깨져 출혈이 심하고 상태가
무척 심각히 판단되는 상황,
때마침 달려오신 군의관님께서
급히 어르신의 상태를 관찰하시며
먼저 손가락 골절 여부를 면밀히
살피시고 통증 유무를 확인하신 후,
다행스럽게 뼈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시며
상처 부위를 잘 소독하고 봉합 후
지속해서 상처 치료만 잘하면
금방 나을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씀과 함께 즉시 상처
보호 및 처치에 돌입,
군의관님의 월남전 실전 현장에서
터득하셨다는 경험과 판단에 의한
노련하신 처치술로 상처 봉합과 치료,
드레싱까지 거침없는 실력 발휘를
보이신 후 약 처방까지 내려주시며,
한여름이라서 덧나기가 쉬울 터이니
상처 부위가 감염되지 않도록, 특히
물에 젖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고
당분간 무리하게 손을 쓰시는 일은
삼가시고 조심하시라는 주의와
함께, 필히 우리가 주둔하고 있는 동안
매일 오셔 치료를 받으시라는
의무관님 당부사항을 끝으로
상황을 종료하시자,
야전인지라 마취는 언감생심
맨땅 운동장에 누워 장정들 손에
사지를 포박당하신 채
생살에 바느질을 당하셨음에도
표정 하나 변함없이 잘 견디고
버텨내 주신 어르신께서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시며
연신 굽신굽신 고마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신다.
살며시 첩약 봉지를 쥐여 드리며
이제 안심하시고 돌아가셔서
상처에 탈이 생기지 않으시도록
당분간 좀 쉬시는 편이 좋겠다는
위로 말씀과 함께 내일 저녁 무렵
꼭 오셔 치료를 받으시라는
말씀을 끝으로
어르신을 돌려보내 드린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루 또 하루의 야전 생활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반복적인 연장선상에서
오후 일과가 끝나가는
시간 전후쯤,
치료를 위해 찾아와 주시는
그 어르신의 방문 시간이
하루 또 하루 거듭될수록
묘한 친밀감이 생겨남과 함께,
야전에서의 고단한 하루가
그 어르신과의 치료 시간을
거치는 짧은 동안, 군 생활에서
쌓이는 긴장감과 피로가
조금씩 해소되어가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고향 어르신과 같은 정겨움,
더욱이 나의 삶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생소함,
즉 부정의 낯섦이 나의 가슴에
내재된 설움 덩어리를 어르신의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감성이
왠지 모를 훈훈한 설렘으로
가슴 한 자리를 차지하며,
오히려 나 자신이 위로를 받고
위안과 평안을 얻는 충전과
치유의 시간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함과 함께
날이 갈수록 이제는 나 자신이
먼저 기다리다 못해 민가로
찾아 나서기까지 할 만큼
친분과 정이 깊어갈 즈음,
이 세상 머물러 있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처럼,
그 행복도 잠시
인연은 딱 여기까지뿐이었던지?
어느새
어르신의 상처에도 실밥을 풀어내고
거의 완치 단계에 이르렀고,
삼청교육도 마침내 막바지에 다다라
외곽근무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되자
부대 복귀 명령이 내려지고
야전 파견 생활이 자동 종료됨과 함께
자대로 돌아와 병영 일상을
회복해 가는 다소 좀 부산한 상황,
훈련 강도와 군기 면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수색대 생활,
정신없이 뛰고 쏘는 고강도 훈련과
밤낮없이 이어지는 상황 근무와
차트 업무로 인하여,
그간 파견 생활로 느슨해진 군기가
다시 빳빳이 각이 잡혀갈 어느 무렵,
발신인 주소 면이 백지상태인
편지 한 통을 받아 들고 궁금증을
키우다 서둘러 개봉하고 난 잠시 후,
곧 진한 감동과 기쁨으로
설레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치열한 전장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폭격이 난무한 산야에도
꽃은 피어난다고 하였던가?
코로나 전염병이 사회적 거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지구상 온 천지를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휘몰아 넣고
아무리 생명을 위협하고 겁박해도
변함없이 해는 뜨고 지고,
오늘의 인류 역사에서 보는 것처럼
이도 곧 지나가고 극복되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인지상정인 것처럼,
그 서슬이 시퍼렇던 삼청교육대
외곽진지 분교초등학교 연병장에도
군인과 민간인의 일상이 머물고
교차하는 치열한 삶의 격전지라서
인연은 그렇게 예고 없이
피어나는 것이었을까?
내용인즉,
아버지께서 공사장에서 일하시다.
손을 심하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셔
급히 병원으로 가시던 중 때마침,
군부대가 학교에 주둔해 있음을 아시고
병원은 멀고 너무 급하고 위중한 나머지
군부대를 찾아가시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곳 의무대로부터
친절한 처치와 치료를 받으시고
꽤 오랫동안 출장 치료까지
베풀어준 덕분에 무사히 완치가
되셨다는 설명과 함께
큰 도움을 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편지를 올리게 되었다는,
그 어르신의 따님으로부터 전해지는
훈훈하고 설렘 가득한 보답의
편지였던 것.
그로부터 이삼일이 지난 후,
깔끔하고 정갈한 필체로
자신의 성명에 이은
간단한 소개 및 관심사 등을
적은 내용의 편지가
주소와 함께 #“희순 올림”으로
꼬리를 물기 시작하여,
곧 이틀이 멀다고
M60 기관총 연발사격
예광탄이 표적지를 찾아가듯
연이어 날아든 편지 들이
내 심장을 표적 하여
화력을 집중한다.
이렇게 이어진 편지 왕래가
날이 갈수록 그 기대와
설렘을 증폭시키며
일과 시간이 온통 내내
기다림의 연속이 되고,
통제된 시간과 제한된 생활 속
그 거칠고 척박한 병영생활에
미지의 숙녀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든 그 호감의 편지가
얼마나 큰 위로며 얼마나 가슴 설렌
안식과 도피가 되었을지 무슨
설명과 해석이 따로 더 필요하랴?
마치 서로를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비로소 겨우 어렵게 만난 연인
사이처럼 서로의 모든 것을
편지지에 담아 하나 남김없이
낱낱이 다 내보여 줄 것처럼,
미주알고주알 깨알 같은 사연들로
일과 시간을 제외한 상황 근무시간까지
온통 편지를 써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으로 노름판 노름 밑돈
탕진하다시피 시간을 허비하며
펜팔에 열정을 더해가는 사이,
오가는 편지의 횟수가 거듭해 갈수록
그 기대와 열망도 점차 수위가
고조되어만 간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이니만큼
사진을 좀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필두로, 몇 번을 사정하듯
거듭하다가 여의치가 않았는지
이젠 한술 더 떠 면회하러 가고 싶은데
되겠느냐는 사정 섞인 애원에 이어
점점 그 강도가 절박하리만큼
높아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이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애절한 하소연이 전하여 올 때까지
거의 1년 반여 동안을 내내 그렇게
편지 쓰기에만 몰두하면서도
그 애원에는 왜 그렇게 냉정하고
매정하게 바쁘다는 핑계와
훈련 중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정작 거리를 두고자 했었는지
이제 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야박했음이 소름이 돋도록
비인간적이였으며 그러했던
내 자신이 선뜻 용서가 되지
않을만큼 비정하고 잔인스럽다.
정말 후회스럽고 더 죄스러운 것은
군 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막바지
제대가 가까울 무렵,
제발 마지막 부탁이라며 꼭 한 번
만이라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춘천엘 들러줬으면 한다는
간곡한 부탁을 사촌 오빠를 통해
누누이 전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그마저도 못내 외면해버린 채,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와 미련이 사는 동안 내내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시시때때로 꾹꾹 걸리고 아픈,
그 가련하고 서글픈 이름
#희순!!~
얼굴 마주 보며 눈짓을 나눠 본 적도
서로 가까이 사랑을 나누며 길을
걸어 본 적도 없는,
그저 오가는 편지 속 상상 속에서
느끼고 교감하는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과 같은 맑고 순수한
사랑이었건만,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간절하게 하고 무엇에
난 영혼을 저당 잡혔길래 그처럼
목석이 되어야만 했는지?
생각할수록 그저 설움만 깊고
자책감만 커짐과 함께,
때늦게
이제 와 이 무슨 청승이며,
이 나이가 되어서 무슨
미련을 키우자고 매년 이맘때
봄만 되면 습관처럼 또 이렇게
홍역을 치르는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깊어가는
회한과 한숨으로 마음이
더 저리고 힘들어지는 것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인한
조화며 영속인 것인지?
아마도 정녕
나날이 써서 주고받은 편지 속에
서로의 영혼까지 털어서 줘버린,
백옥처럼 하얀 목련꽃을 닮은
순결함과, 연분홍 진달래처럼
풋풋한 아름다움과, 벚꽃과 같은
화사함과 복사꽃처럼 곱고 수줍은
소녀의 애틋한 사랑을 무참히
짓밟고 외면해 버린 것에 대한
그 죄가 결코 만만치 않아서,
봄이면
이처럼 봄꽃 전령들로 하여금
더 서럽고 더 애절하고 더 처절한
고통을 겪게 하려는 가중 체벌인지?
그저 머리 조아리며 그 죄를 나름
가늠할 뿐이지만,
이제 응당
그 벌이라면 기꺼이 감수할
마음의 준비와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다시 깨닫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며
다시 부르기조차 안타까운
그 이름 #희순을 불러 간곡히
전하고자 합니다.
이 봄은 비록,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사회적 거리감은 점점
더 멀어져 인간적 교류와 교감에
불신의 늪이 깊어질지라도 머잖아
이도 곧 지나고 극복되리라는
믿음과 여망으로,
조용히 깊이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이 시간 이 세상 그 어느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 있어 주기
만을 간절히 기도함과 아울러,
신께서 그대께 이 세상을 강건히
버티고 견뎌낼 힘과 용기를 충만케
하셔,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는 마음과
너그럽고 넉넉한 가슴으로
일상을 누리시는 행복을 허락해
주셨다면, 그저 하느님께 고맙고
부처님께 깊이 감사할 터이지만,
행여라도
그때 우리 인연으로 하여금
그대 삶에 슬픔과 원망의
생채기가 된 채 사는 동안 이따금 씩
설움의 그늘이 되곤 하셨다면,
이제나마 그 당시 저의 무정하고
매정했던 처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용서를 청하는 바이니,
부디 그때 그 아픈 기억일랑
통째 구겨서 나 보란 듯이
통쾌히 폐기처분을 하시고
그대의 남은 삶은 기쁨과 사랑
보람과 축복으로 아름답게
빛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그 어디에서든
저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이 봄을
느끼고 누릴 수 있으시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제겐 가슴 벅찬
기쁨이고 더 없을 축복이겠으며,
나처럼 이따금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구김 없는 미소 지으시며
오늘을 구가하시는
아름다운 삶이라시면,
더없는 광영이며
또한 행복이겠습니다.
혹여,
작금의 삶이 그대께서 의도하신
바와 달라 다소 좀 어렵고
힘에 부치시더라도
이제 지금 이 순간부터 저의
기도와 축복을 헤아리셔,
언제 어디서 건 늘
힘과 용기 잃지 마시고
강건하시길 간곡히
당부드리며,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그대의 삶과 남은 일생에
기쁨과 행운이 충만하기를,
나날이 건강과 평안
축복과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축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한 번은 전하여 드리고픈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가슴 시려 차마
지우지 못하는
그대 삶에 행여
누라도 될까
마음껏 소리 높여
부르지도 못하는,
빼앗긴 봄이라서
더 서글픈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을,
가슴으로 꺼억꺼억
불러보는
목에 가시처럼 걸린
그 이름
#지희순입니다.
2020년 4월 7일
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