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어진 골목 끝에서
연인을 기다렸던 것처럼
무던히도 기다려왔던
한여름 비였기에,
잠시 약해져가는
장맛비 속으로
배낭 하나만을 툭 걸쳐 멘 채
반바지 차림에
훌쩍 도심을 나선다.
한증막처럼
후텁지근한 열기가
훅하고 입을 틀어막고
여름 내내 메말랐던
아파트 축대 배수구녕이
제법 센 오줌줄기를
보란 듯이 내깔린다.
7월 막바지 진초록 숲에
마치 숨죽인 연주회처럼
바람을 장단삼아
들이치는 빗소리가
연가처럼 감미롭고,
그 빗소리를 배경음 삼아
숨어 우는 바람소리처럼
다정한 여인의 속삭임처럼
남모를 섹소폰 소리가 가냘피
용마산 중턱으로부터 들려오고
운무와 함께 맞서는
비 젖은 바람이
끈적한 가슴팍을
뻥 뚫고 지나간다.
모자 채양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훔쳐가며
용마산 몬당에 당도하니,
저 먼발치
비에 젖은 도심은
김이서려 있는 듯
비지땀이 서렸고,
가픈 숨을 몰아쉬는 노객
물에서 막 건져 올린
빨랫감처럼
땀과 빗물로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용마산 삼각점 철탑아래
제철을 맞은 나리꽃만
비에 취한 듯
바람에 구애하듯
호들갑스레 웃는
여인의 붉어진 얼굴처럼
만면에 함박웃음을 흘리고,
겨우 숨을 고른 난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흥건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짜릿한 행복감을 얻는다.
장맛비 예보로 인한
소금산 출렁다리
산벗 산행을 취소한
아쉬움으로부터의
욕구 충족과,
장마 끝에 마주할
본격적인 폭염의 터널을
무탈히 건너기 위한
나름 신고식에서의
위안과,
생일날 휴가차
친정으로 떠나간
아내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와,
올 들어 첫
아차산의 작은 계곡이
장맛비를 빌어서 비로소
계곡으로서의
온전한 기능을 충족한 채,
제법 물소리를 내며
아래로아래로 담박질 쳐가는
줄기찬 계곡물에 발 담그고
땀과 비
몸과 마음
일상으로부터의 꿉꿉함울
일시에 씻어내는,
시원함과~
후련함과~
상쾌함으로부터
잔잔한 소확행의
기쁨을 누린다.
2019년 7월 28일
(우중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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