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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아들이 있어서 행복한 날

비 찔찔 맞아가며 현장실측하고

시안 잡고 견적 디민 것이

나름 젊은 여 고객님(?)의 호응을 얻었던지

흔쾌히 계약 성사 후,

거래업체에 급행 발주 3일 만에

자재 확보 및 발주 물 규합하고 협력업체 간

지원 작업까지 병행 해가며 혼자서 밤늦도록

이틀을 고군분투 끝에 제작을 모두 끝내고

지난 밤 늦은 퇴근길에 올랐었다.

당초 월요일(30) 오전 설치 약속이었지만,

고객님의 오픈 행사 계획이 맞춰져있어

한시라도 빨리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고객님의 요청을 외면 할 수만은 없어

오늘 토요일(28)로 시공 계획을 앞당겼었던 것.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규모는 작지만 다소

좀 퀄리티 높은 싸인물 이라서 조심성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시공 시 혼자 들어 올려 고정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예상이 돼, 아침식탁 머리에서

넌지시 아들한테 오늘 무슨 계획이 있나

조심스럽게 묻는데, 친구랑 낚시를 가기로 약속을

했다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숟가락질만 바쁘다.

 

몇 시쯤 가는데?”

 

밥 먹고 곧 출발할거라는 무미건조한 반응에

더 이상 기대를 접고 서둘러 출근길에 오른다.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고객께 전화를 드려

오늘 시공을 계획 중인데 혹시 현장에서

인력 지원을 좀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반색을 하시며 여성도 가능 하냐 시며 젊은

여사장님께서 흔쾌히 승낙을 해주신다.

오후 3~4시 현장 도착을 약속하고 잠시

이것저것을 확인하며 정리정돈에 바쁜 중에

고객께서 급하게 오픈 플래카드를 추가

제작 요청함에 따라 컴 앞에 앉아 디자인

작업을 서두는데 아들로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

이 녀석이 아침에 아빠가 넌지시 하는 지원요청이

마음에 걸려 마침내 뒤돌아 오려고 하는가 싶어

반가이 이어폰을 켜자,

빠르고 급한 어투로 놀라지 마시라며

낚시 가는 중에 접촉사고가 났는데 큰 사고는

아니니 걱정은 마시고, 아들의 과실이 아니어서

상대방이 과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 보험사에

연락을 취했는데 아들도 자차 보험사에 신고를 해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별로 놀라거나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차분히 물어와 나 또한 별 큰 사고는 아닌

것으로 판단, 거기에 대한 대답만 짧고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 통화를 마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좀

꺼림칙하여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아빠로써 좀 아빠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면

응당 먼저 아들의 안전부터 묻고 상대 차량 운전자의

안전과 사고 경위를 물었어야 마땅했을 것을

내 기대와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사고를 당해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을 아들 생각을 간과하고

아빠로서의 품위와 품격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영 개운치가 못하다. 다시 폰을 꺼내들고

아빠답지 못했던 자책감을 얼른 떨쳐버리려는 듯

쌍방 간 다친 데는 없고?”라는 문자를 보내자

곧 레카차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재차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답문이 들어온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사춘기를 겪는 것인지,

하찮은 것으로부터 몇 번 감정이 부딪치고 나서는

말 걸기도 망설여지고 가까이 하기엔 뭔가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 같아 자꾸만 부자지간에 틈이 깊어져

가는가 하는 걱정으로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았는데,

오늘 이 사건으로 인하여 더 틈이 벌어질까봐

불안스러웠던 마음을 다소 좀 덜어내며,

다시 모니터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플래카드 디자인을 마무리하여 파일 발송 후

느긋하게 늦은 점심을 마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불청객 한더위를 만난 듯

제법 후끈한 기온에 혼자서 낑낑대며 간판을 조심스레

차에 싣고 공구 및 잡 자재를 꼼꼼히 챙겨 담아

역삼동 현장으로 출발을 감행한다.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젊은 여사장님의 반가운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답례하고 먼저 공구함을 내려서 현장

동선 가장 한가한 곳에 펼쳐 놓은 후 작업 공구 벨트를

허리에 맨 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분히 작업을

시작한다. 업장 안에서부터 혼자서 용이한 작업을

우선 순으로, 여사장께서는 언제든 필요하시면

불러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내부 카페정리에

분주하고, 내부로부터 간단한 실사물 부착을 마치고

곧이어 밖으로 이동, 접이식 사다리를 펼쳐 세운 후

조그마한 돌출 싸인물 설치작업에 몰입한다.

작은 고추가 맵다 하였던가? 예상 밖의 고전에

비지땀을 훔쳐가며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던 끝에 겨우 간신히 설치와 전기결선을

마치고 내려와 작은 한숨과 함께 한 숨을 돌린다.

현장에서 혼자서 작업을 하다보면 특히 잡다한 일이

많은 현장에서는 처음 시작부터 서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두서없이 현장이 어지럽혀 지기만하고

일머리가 꼬이기 십상이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현장 일에 이골이 난 상태라

철저한 사전 계획 및 준비가 그 현장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척도가 됨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그 사전 계획과 준비마저도 현장 파악이나

이해가 부족하면 계획과 달리 전혀 다른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가 있다.

작다고 너무 얕보고 공구 준비가 부족했던 게

실수가 된 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나 할까?

이제

누군가의 도움을 요하는 본 작업에 돌입한다.

사다리 2개를 길게 펼쳐 건물 외벽 전면에

중심을 잡아 안전하게 기대 세워놓고

사다리를 번갈아 이동하며 LED(조명)을 부착한다.

상호문자 배열에 맞게 촘촘히 설치를 마치고

실리콘으로 고정 후 전원 공급 장치까지 완벽하게

부착하고 나서 젊은 사장님을 불러 점등을 확인하고

마침내 이어서 사장님께 지원을 요청한다.

젊은 사장의 어머니 라 시는 분까지 함께 나오셔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타원형 철제 싸인물을

적재함에서 조심히 들어 올려 사다리 안쪽 아래에

세워 붙드시게 한 후, 사다리를 가만가만 올라가

한 손으로 싸인물을 힘껏 들어 올려서 조명 설치물에

끼워 맞춰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누군가가 밑에서 확실하게

싸인물을 밀어 올려 함께 끼워 맞춰 고정 해주지

못하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에, 다시

싸인물을 그대로 든 채 사다리를 조심스레 내려서

간신히 적재함에 다시 올려놓고, 얼굴까지 시뻘겋게

상기되신 채 어떡케 하냐 시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향해 보시는 두 분께 역시 무리 였슴을 밝히고

아무래도 다른 조력자를 불러야 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고 안심케 한 후,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을 기억 해내며 휴대폰 주소록을 검색하다가

이 판국에 팔짜 좋게 지금까지 낚시질인가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 얼른 아들을 향해 곧장 문자를

날린다.

 

혹시 올라오는 중이냐?” 라는 문자에

한동안 묵묵부답이다.

~!!~ 강하게 함 밀어 부쳐보자 싶어

현장 주소 찍고 도저히 혼자는 안 될 것 같으니

올라오는 대로 좀 도와주라는 강압적인 문자를

찍어 보내고 나니 금방 답신이 온다.

아주 짧고 간단히~ “알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현장 정리를 하는데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차가 좀 막혀서 시간이

두 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는 전언에

온다면야 밤새워 기다리겠으니 서둘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오라고 전하니 제법 위로의

문자까지.....................

이제야 아침의 괘씸했던 생각이 다소 좀

풀리며 마음에 여유가 생겨난다.

 

한 때,(입대 전)방학 땐 물론 공휴일을

굳이 택해 현장으로 데리고 다니며 쥐꼬리만큼의

알바 비를 챙겨서 줄때면 사양할 줄도 알고

아까워서 못 쓰겠다며 모아두었다 저의 엄마께

몽땅 털어 넣어주기도 했던 녀석이었는데,

군 제대 후엔 주는 대로 꿀꺽꿀꺽 챙겨 넣는 것은

당연, 한번이나 도움을 청할 때면 꼭 몇 시부터

몇 시까지냐며 굳이 시간을 따져 묻곤 하면서

그때마나 얼굴엔 달갑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보니 근래엔 웬만하면 평일 일당을 불러다

일처리를 해오면서도 아주 어중간한 일이 있을 땐

아들한테 최대한 현장 지원요청을 자제하며 눈치만

살피던 중이었는데, 마침내 오늘 아침 그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어렵게 말을 꺼내 봤던 것을,

그런 퉁명스러운 대꾸로 일관했던 것에 대해

조금은 괘씸한 생각을 못내 지울 수만은 없었던 것.

 

주택가가 밀집한 차선 없는 상가지역이라

간판 자체가 고급 공정에 고급 광고물인 반면

규모가 그다지 크지가 않으면서 비교적 간단한

싸인물 이라서 이제 거의 마무리가 다 돼가는

상황, 이제 남은 작업이란 조금 전 시공 중단됐던

메인 간판 타원형 싸인물만 기존 싸인물에 맞춰

조립한 다음 고정만 시키면 완료하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보조인력 없이 혼자 사다리에 올라서

작업하기란 다소 좀 버거운 공사이기도 하고,

이만한 작업에 인력을 부른다는 것은 곧

파리 잡겠다고 미사일 쏘는 격이라 잠시잠깐 아들의

힘을 빌려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 계획이 결국은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사가 된 셈.

 

망중한의 시간이 느긋하고 여유롭기만 하다.

업주께도 점등까지 확인을 하셨으니 굳이

현장에 머물러있지 않으셔도 되니 업장 문

닫으시고 다른 업무를 보시거나 퇴근을 하셔도

좋다고 말씀을 드리니 염려치 마시라는 말씀과

함께 분주히 어디선가 화분을 옮겨 오기도하고

안팎 정리정돈에 바쁘시다.

그렇게 한 시간여 시간이 지났을까?

좁다란 도심 골목에 햇볕이 사라지고

밤 그림자가 길게 거리로 들어서기 시작하는

해질녘, 트럭 앞으로 바짝 코를 디밀며 흰색

소나타가 멎는가싶더니 아들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빠져나온다.

 

~!!~”

어떡케 벌써와?”

천천히 조심해서 오랬더니 날라 오지 않고서야?”

 

차를 이웃 영업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변 한가한

곳으로 이동 주차케 하고 차와 아들을 번갈아가며

살피고 의아한 듯 아들한테로 다가서자,

금방 지정체가 풀려서 예상보다 빨리 올 수가

있었다며, 렌트해서 받은 대차라고 아들 차 보다는

훨씬 크고 때깔 나는 차라고 으쓱해하며 별 나쁘지

않는 표정이어서 안심하고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사고처리는 잘 했느냐? 다시 한 번 묻는다.

녀석은 차 흠집 난 부분을 폰으로 찍어와

꺼내 보이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첫 경험하는 사고라서 많이 놀라고 당황해서

아빠께 전화까지 드리게 됐는데 걱정을 끼쳐

죄송했다는, 아빠께서 놀라지 않으시고 차분히

응대 해주셔서 녀석도 안정이 되고 안심을

하게 되었다며 내 우려와는 달리 차분하고

원만한 사고처리 결과에 대해 대견함과 함께

큰 경험 쌓으며 고생이 많았다 위로를 끝으로,

 

간판을 가리키며 이것만 올려서 조립하면 되는데

너를 부르게 됐다고 웃으며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자

알았다는 듯 곧장 접이식 사다리를 A형으로

세워 올라갈 위치에 놓고

 

제가 사다리 여기 쯤 올라서 밑에서 바치고

저기에 함께 끼워 맞춰 넣으면 되죠?” 이젠 제법

현장 파악 및 이해가 빠르다.

 

!!~ 오케이!!~”

잘 잡고 있어!!~”

내가 먼저 올라간다!!~”

 

우린 잰 듯 들어 올려서 민첩하게 끼워 맞춰

피스까지 완벽하게 조임 결착 후 불과 10분여

만에 시공을 깔끔히 마치고, 점등과 함께 젊은

사장님을 밖으로 나오시게 해 확인 점검케 한 후,

젊은 사장과 그 모친으로부터 간판이 너무너무

예뻐서 마음에 쏘옥 드신다는 호평과 함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흐뭇한 맘으로

뒤로하고 기분 쌈박하게 돌아서 집으로 향한다.




늘 상 하는 일이지만 현장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정말 힘들고 짜증스런 상황이 비일비재하더라도

그러한 고단함과 막막한 순간들을 어쩌면 이러한

한순간으로 인하여 잊고 참고 버티고 지키며 긴긴

세월동안 줄곧 이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내 자신의 삶에 긍지를 느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터덕터덕 집으로 들어와 아내가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가 있는 중이어서 왠지 모를 허전함에

엉거주춤 서있는데, 지하주차장에 파킹한 아들

녀석이 낚시 도구 및 잡다한 생필품 보따리를

양손에 잔뜩 들고 올라와 내려놓고 다시 내려가

들고 올게 많다며 바삐 나간다.

가져올게 많으면 같이 내려가 한꺼번에 들고

오려고 불러 세우자 차가 바뀌어서 나중에

다시 원위치 하려면 복잡할 것 같아 들여놓으려

한다며 손사래를 치며 내려가더니 금방 또 한

아름을 저의 방으로 들고 들어가 내려놓고 나오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들!!~”

뭐 엄마도 없고 하니 우리 간만에 나가서

저녁 겸 쐬주나 한잔 하고 들어올까?“

 

아들역시 흔쾌히 맞장구를 쳐줘서 부자간 참으로

오래간만에 마음이 통하는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와 장안동 소방서 뒷골목 맛 집 골목을

나란히 걸으며 즐비한 상가 메뉴판을 살피고

다니다가 언젠가 딸과 함께 데이트 중 들러서

맛을 보았던 보쌈집 앞에서 아들한테

보쌈 어때?”

 

아들역시 고기가 먹고 싶었다며

빈 틈 없이 등을 맞대고 다닥다닥 앉은 손님들

틈새로 안쪽 깊이 딱 하나 비어있는 탁자로

안내 되어 탁자를 가운데 두고 털썩 마주보고

주저앉는다. 앉자마자 아들 녀석은 접촉사고 당시

상황을 다시 설명하며 사고처리에 관한 더 많은

궁금증을 쏟아내며 이야기를 잇는다.

아들이 궁금해 하는 온갖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사고 발생 시 사고처리 우선순위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애매할시 최종 경찰을 통한

사고 접수를 비롯한 대인 대물에 관한 보험사

사고신고, 접수 및 경미한 사고 시 쌍방 간 합의처리

등등의 끊임없는 이야기가 꼬리를 무는 사이 어느덧

먹음직스런 메뉴가 식탁위에 오르고 잠시잠깐 사이에

이슬이가 벌써 한 병이 금방 나가떨어진다.

그러는 사이 그동안 아들과의 소원했던 마음이 열리며

사고로 놀랐을 아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포근히

위로하고, 근간 저의 누나와 엄마의 관계가 갈수록

친밀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여나 소외감이라도

키우며 섭섭한 마음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에

딸과 아내의 입장을 설명하고, 아마 누나가 암 고생을

하는 동안 엄마와의 사이가 각별 해져서 더 그럴

것이라는 부연 설명에 아들 또한 격 공감하며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친김에 그러한

누나에게 좀 더 너그럽고 다정하게, 엄마에게는 좀 더

믿음직스럽고 크고 넓은 아들로서의 든든함을 보이라

격려하고 당부하며 어깨를 두드리자, 술기 오른 얼굴에

한가득 기분 좋게 웃어 보이고 나서 비록 아빠의

기대처럼 썩 잘나가는 청춘은 아닐지라도 나름 괜찮은

젊은이 임을 자부하고 산다는 아들을 손잡아 칭찬하며

그동안 부자간 다소 불편했던 마음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낸다. 이슬이 세 병이 털리는 동안 우린 든든한

부자지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홀가분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손님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텅텅 빈, 빈 탁자

사이를 조심조심 빠져나온다.

 

집 앞에 이르러서

 

아들!!~”

우리 저 식당 앞 의자에 앉아서 오붓이

담배한대 피고 들어갈까?”

 

앞서가며 주머니를 뒤지던 아들이 라이터가 없다며

잠시만 기다리라 뒤돌아 집 마당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다시 나오며 다른 쪽 주머니에 있었다고

담배를 꺼내 내밀어 주고는 라이터에 불을 살라

다른 손으로 불을 감싸서 얼굴 가까이 내민다.

뒤돌아서서 저도 한 대를 피워 물며 함께 의자에

앉아 얼굴을 돌려 담배연기를 길게 품어내는가

싶더니 가만가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와 기억해보니 아빠랑 좋은 추억들이 참 많이

생각난다며 아빠께 첫 술잔을 받았던 이야기며

난 까마득히 기억에도 없는 저 어릴 적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놓으며 아빠랑 좋은 기억이 많아

고맙고 감사하단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 울컥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온다.

아이들 둘을 키우면서 남들처럼 살갑고 너그럽게

대해주지를 못하고 한 때는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키우며 살아왔던 자신이 가끔은

후회스럽고 부끄럽고 내내 미안스럽기도 했건만

아들 입을 통해서 이런 감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러워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한동안의 힘들었던 시간들과 지금까지 가슴에 늘러

붙었던 답답했던 것들이 일순간 말끔히 사라지며 그

동안의 모든 불편했던 기억과 아픔으로부터 말끔히

치유 받고 보상받고 위로받은 것처럼 가슴이 뜨겁고

날아갈 듯 가뿐하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가만히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

아들이 아빠를 그렇게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니

더없이 기쁘고 고맙고 감사하네!!~

사실 아빠는 너희 할아버지께서 오래전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부정을 받아 본적도 느껴 본적도

없었던 배고프고 정 고픈 삶을 살았었다.

다행히 부유하고 다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듬뿍 사랑과 정을 받으며 자란 네 엄마를

만나서, 이 세상에서 누나에 이어 네가 우리의

딸과 아들로 인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귀하고 소중하고 기쁘고 감사한

선물이었는지를 지금 너흰 아마 모를게다.

그저 그 어느 아빠보다, 이 세상 그 어느 가장보다

든든한 아빠, 훌륭한 아빠, 끝까지 책임지는

가장이고 싶었다. 최소한 이 아빠의 아버지처럼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너희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무책임한 아빠는 결코 되지 않겠노라는

나 스스로의 욕망이고 약속이고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다정함 보다는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랑으로, 칭찬보다는 더 강하고 더 품 넓은

아들과 딸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낯 설은

부정에서, 표현까지 익숙하지 않은 어설픈

부정에서, 누나한테서 그 욕심을 그치지를 못하고

이어 너한테까지 본의 아닌 원망과 상처를

안겼다는 사실로부터 후회와 함께 견딜 수 없는

원망과 자책감에서 잠시 한 때 이 세상에

살아있을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끼며 실의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특히 아들과의 관계가 점차 멀어질수록 그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와 많이 힘들고 어려웠는데,

오늘 아들로부터 좋은 추억이 많아 감사하다는

말을 직접 듣고 나니 더없이 기쁘고 고맙고

감격스럽고, 살아갈 힘이 넘치네!!~“

 

고백처럼 잔잔히 이어지는 내 이야기에 아들도

감동했는지 일어서 주먹 쥔 손을 불쑥 내밀고

 

아빠 우리 함께 힘내보자는 의미로 힘차게

주먹 쥐어 한손 하이파이브 한번 해요!!~”

 

우린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껴안고 뜨겁고 격한

서로의 감사한 마음을 공감하며 참으로 오래간만에

부자지간 끈끈한 사랑을 나눈다.

 

아들!!~”

아빤 네가 내 아들이어서 참 좋다!!~”

오늘 넌 많이 놀라고 당황했을 것 이지만

이렇게 아빠 일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고 더 좋다~

울 아들이 있음으로 아빤 든든해서 참 좋아!!~”

 

아빠 사랑합니다!!~”

 

그래!!~”

아빠도 우리 아들 많이 사랑한다!!~”

 

뿌연 가로등 저 밖 멀리

짙은 어둠속 밤하늘로부터

아들로 인하여 일비일희했던 하루가

흐뭇한 여운을 남기며 까맣게 깊어간다.

아들과 다정히 어깨를 맞대며

주차장 마당을 나란히 걸어서

아내가 없는 텅 빈 집을 향해

그나마 아들과 함께 나눈 뿌듯함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또 하루를 접는다.

 

 

201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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