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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소풍

유난히 모질고 혹독했던 긴긴 겨울이었으리.

눈치 빠른 봄꽃 위에 몽니를 부리듯이 눌러앉은 춘설을

입김으로 후후 불어서 녹여내며 한참을 일삼다가

물린 듯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고는

이내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여울진 어느 강변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버들강아지를 흠칫 발견하고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선뜻 다가가

조심스럽게 두 손을 모아 감싸 쥐고 부드러운 감촉에

사랑스러운 교감을 나누고 나서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른 나루터를 가로질러 사공의 승선만을 학수고대하며

출항만을 기다려 온 내 삶의 배위에 성큼 뛰어오른다.

낡고 허름한 선체에 덕지덕지 세월을 덧대

겹겹이 못질이 된 돛단배에 오십육 호라 선명히 새겨진

돛을 높이 고쳐 달고 굽이굽이 여울진 세월의 강을 따라서

서서히 소풍을 떠난다.

새롭고 신비스런 또 다른 신천지에 닻을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하고

바삐 달음질쳤던 걸음을 잠시 쉬어가며 고단함을 달래고

못하고 빠뜨린 것, 죄송하고 미안한 것 등, 두루 돌아보며

이제 조금의 안정을 이제 약간의 여유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꼭 그래야만 되는 것처럼 폭풍 속 같은 삶을 이어오며

인생이란 운명의 별천지를 숙명처럼 헤쳐 나오는 동안

한때는 들뜬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온 세상이 내 것처럼

기쁨의 웃음을 감추지 못하였고,

또 한때는 이따금씩 불안과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하여

이세상이 온통 지옥과 암흑 같은 곳이 되기도 했었다.

사랑과 축복으로 이 세상에 내린 것이 소풍을 떠나는 것이었다면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세상으로 향한 발걸음은

운명과 숙명을 찾아가는 험난한 귀로의 여행길이 아니었을까??!!~

 

 

수백만이 서로 겨루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신께서 내게

은총을 내리셨음인지 운 좋게도 그 귀한 행운의 당첨권을

극적으로 거머쥔 끝에 나만의 궁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몸을 불려 힘을 기르며 운명의 때를 기다린 끝에

농번기 철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는 어느 시골마을

한여름 무더위가 정점으로 치닫고 모내기가 한창 인

논배미 마다 울다 지친 개구리들마저 울음을 거두고

서둘러 잠자리를 찾아가던 야심한 밤,

피로에 지친 농촌 시골마을 깊은 정적을 깨우며

은혜로운 부모님과 다정한 누나와 형이 함께 하는

축복으로 가득한 가족의 품에 안기며

거대한 세월의 강에 휩쓸려 운명의 소풍을 시작한다.

그 들 품안을 독차지 한 채 그저 본능 하나를 밑천 삼고,

기뻐선지 슬퍼선지 놀라선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기필코 존재 확인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참동안 목청껏 악을 써대며 힘껏 울어 제치며...................................

 

낯 설은 초행길이라서 적응하기가 여의치 않았었는지

가족들의 애틋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병치레를 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새로움의 연속이고

그 연속의 시간 들은 언제나 반복의 연속이었으며

또한 그 시간은 한시도 한 자리에 멈춰서는 법이 없었던 것이라서

그 요술 같은 시간은 우릴 항상 그 힘든 곳에

꽁꽁 묶어 두는 법이 없었으며 또한 마냥 행복하게만

내버려두는 법도 없었다.

때로는 가족들이 나약히 시들어가는 내 어린 생명을

포기를 해야 할 만큼 슬픔을 안기게도 했었고

이따금씩 죽음이란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와

그들을 향해 가녀린 생존의 숨결을 이어 갈 때는

가족 모두가 함께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다.

그 와중에서도 신께서는 그러는 우리 에게 또 한 생명을

선물처럼 안겨주시고 부모님과 누나와 형과 여동생을

이 세상 함께 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새둥지처럼

포근한 보금자리를 틀게 해주셨다.

세상이라는 드넓은 벌판의 아름다운 꽃동산에서

소풍을 즐기는 것처럼, 비록 가난이라는 굴레를 쓰고

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현실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 세월이 그러하였음을 탓해본들 뭐하겠는가?

가는 길이 언제나 꽃길이리라 여기던 그 어느 길목이었을까?

차츰차츰 뒤쳐져 오시던 아버지께서 몸져누우신지 2년여

내 나이 다섯 살, 그 해 가을이 채 여물기도 전

설익은 가을이 서산 노을을 머금을 무렵 끝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 길 위에 고스란히 남겨 두신 채로

못다 하셨을 정과 사랑을 외면하신 채

애석하고 야속하게도 길지 않은 그 길모퉁이에서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셨다.

이후로 우리 어린 네 남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꿈에서라도 단 한 번 길 위에서 마주친 적이 없으셨으니

그 길이 얼마나 냉혹하고 야박한 길인지를

수 세월을 살아가며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 당시는 몰랐었지만 여행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버지의 울타리, 잠깐 동안 아버지의 그 빈자리는

너무 크고 절실한 것이었음을 두고두고 사무치도록 절감했다.

가녀리신 청상의 몸으로 구멍이 송송한 울타리를 매만지시며

열한 살 누이와 여덟 살의 형을 의지 삼아 그 험난한 세월을

꿋꿋이 살아내신 어머님을 보며 살아오는 동안 내내

가슴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설움과 슬픔

다짐과 한숨 사이를 오갔다.

 

4 남매 중 나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행운이었는지

초등학교 5,6학년을 같은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인연으로

그 은사님의 특별하신 관심과 사랑의 힘에 의하여

내 어머니께서 어렵게 중학교 진학을 승낙을 해 주심으로

고등학교 까지 문교 혜택을 누릴 수가 있었음은

이 세상을 소풍하는 동안 그나마 나에게는 지식과

지혜와 상식의 원천이 되었음은 물론 소풍에 감성을 일깨우고

올바른 판단과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셨음을 더없는 축복과 은총으로 여기며,

지금도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월 말이면 은사님께 안부를 여쭈는 인사로

나와 은사님 간 뿌듯한 행복을 공감하는 호사를 누린다.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가족들이

자신의 행로를 찾아 어머니의 울타리를 떠나고

내 자신에 관한 정체성으로 고뇌와 번민에 갇히던 시절

지역사회의 청소년 의식개혁 활동의 하나였던 4H활동에

열정을 쏟으며 어머니와 단 둘이 머물렀던 일 년여 시간은

내 어머니께 당신의 자존감과 삶의 보람을 크게 북돋아 드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서 나름 고운 추억으로 간직되어있다.

홀몸으로 노심초사 키워낸 자식이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 신임을 인정받는 마을 서기를 임명 받았다는 사실에

어머니께서는 그동안의 모든 고생과 노고를 보상이라도 받으신 듯

오래도록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셨었다.

마을 마을마다에서 만났던 가슴 뜨거운 지인과 동지들

골목 어귀마다 정겹던 일가친척 친지와 이웃들

세월의 길목마다에서 만난 다정다감한 친구 벗님들

모두가 잊을 수 없는 고운 추억이고

내 청년기 소풍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낯 설은 코흘리개 친구들과

손에 손잡고 줄줄이 떠나며 친구가 되고자 했던 그 순수함으로~~~

 

청년기의 막바지로 이어지는 군복무 시절

논산 훈련소에서 박대통령 시혜사건을 겪고

11사단 수색대대에서 광주사태의 출동명령을 기다리던

아찔한 순간에서 굴지리 유격장 삼청교육대 현장까지

그야말로 가슴 떨리고 숨이 막히는 격동의 순간들을

경험하는 혼탁함 속에서도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면

언제든 어디서든 생겨나는 필연의 것이었던지

살벌한 유격장에서의 특별한 인연은

서로의 목숨을 담보해도 좋을 만한 전우를 만나게 되고,

고되고 힘든 수색대 생활이 외로움과 절박함에

부채질을 했던 것인지 그동안 코흘리개 누이처럼 생각해 오던

같은 마을 햇병아리 숙녀님께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부족할 것만 같은 사랑을

가슴속에 깊이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군대라는 소풍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내 자신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장래를 준비해야 할

절대 절명의 시기가 도래했음이리라.

필연에 의한 가족의 둥지를 벗어나

비로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나만의 세계,

자유가 주어진 만큼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있는 길목 앞에 이정표를 세우고

서서히 소풍 떠날 준비를 서두른다.

사랑하는 여인과 담 넘어 몰래몰래 사랑을 키워가며

한편으로는 당시 선망이던 모 공기업 취업준비에 전념한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당찬 출발을 시작한지 두 달여,

당시 우리 마을 이장 직을 놓고 설왕설래를 거듭 한가 싶더니

엉뚱하게도 그 불똥이 내게로 튀어왔다.

두문불출하고 취업시험 준비에 열정을 쏟고 있는 내 방문을

두드리며 위엄 있으신 어르신, 친척, 선배 분들께서

차례로 찾아 오셔서 젊은 혈기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열정을 한번 쏟아 봐줄 수 없겠느냐며 권유해 오심을

완강히 때로는 사정해가며 어렵게 거절해 보았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요청을 끝까지 외면만 할 수가 없어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길 앞에서 선뜻 승낙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잠깐 헛눈을 판 사이 권유에 이끌려 내 길을 벗어난 것처럼

그 길로 인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기도 했었지만 또한 충돌과 분쟁이 야기되기도 했다.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2년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1년 만에 자진 도중하차 하고

쫓기듯 야간열차에 몸 싣고 무작정 상경을 감행했다.

난생 처음 거대 도심을 실감하는 서울 영등포역 앞,

찬란한 불빛마저 시퍼렇게 눈을 치켜뜨고

껌벅껌벅 졸음을 쫓던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주체치 못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주늑이 든 채 가슴이 오그라든다.

빌딩과 사람과 차들이 북적대는 이 혼란스러운 곳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곳이 내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소풍의 동산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해 맑은 시절

고사리 같은 연약한 손에 내 어머니께서 계란 후라이

특별히 얹으셔서 정성스레 들려주시던 도시락 받아들고

우거진 숲 맑은 공기 연분홍 진달래 흐드러졌던 천은사 계곡

보물찾기 하며 돌 틈새 나무껍질을 뒤적이던 아름다운 시절

나의 그 시절 소풍 별천지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고향을 등지고 도중하차 하고 떠나왔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역시 도중하차 하고 귀향열차를 타고 말 것인지?

많은 생각과 걱정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멈춰 있는 소풍에 무슨 설렘이 있을까?

그 심란할 당시 서울에서의 생활과 삶도

소풍으로 이어지는 엄연한 한 시절이리라.

참으로 안간힘써가며 거칠고 험난한 소풍이었으리~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지만

시시각각의 사연들이야 천차만별 아니었을까?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한 청춘이 무엇인들 못해보겠는가?

광고간판 기술(?)을 배우며 실습비로 지급 되는

약간의 금전을 월급 삼아 서울 소풍을 이어 온지 일 년 반여

직장을 옮겨 스스로 기사 자격으로 품격 상승하고

겨우 혼자서 경제적 문제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사랑이란 참으로 무모한 것이었던지

서로의 사랑을 확인치 못하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처럼

한 달을 주기적으로 달려와 힘과 의지가 돼 주었던

사랑하는 사람과 매번의 만남과 작별의 아픔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우린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부모님께 승낙을

받은 후 혼례식일랑 뒤로 미룬 채 기다렸던 것처럼

한 살림을 시작하는 몰염치함을 서슴치 않았으니

절박한 길에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내 소풍에 동반해 줄 반려자를 숙명처럼 선택하여

또 다른 희망의 길로 접어드는 내 일생 최고의 소풍을 맞이한

가슴 벅찬 순간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기억한다.

소꿉놀이 하듯 서로가 한 곳을 바라보며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한 길 위에서 우린 죽는 그날까지 두고두고 함께할 것을

목숨 걸어 약속 했다.

비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혼전의 부부였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족을 이루고 한 곳에서 함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 처지로서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현실이었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행복 그 자체만 같았다.

중학교 시절 화엄사로 가을 소풍을 갔을 때였으리라.

뭉게구름이 둥둥 떠가는 하늘을 담은 계곡에서

선혈처럼 붉고 고운 단풍잎을 건져 속주머니에 넣고

샛노란 물감을 곱게 칠한 듯한 고운 은행잎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어 다람쥐처럼 온 계곡을 누비며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 지질이도 복이 없어

매번 허탕 치기가 일쑤였건만, 그야말로 그때 딱 한번 찾아낸

보물쪽지가 “춤추면서 노래하기”란

장기자랑을 요하고 있었던지라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하는 수 없이 몰래 버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었던 기억이며,

어머니께서 아껴 쓰라시며 주신 피와 같은 용돈 중에

몇 백원의 거금을 아낌없이 쾌척하여 어머니께 선물 드릴

호박엿 몇 알을 사 종이에 싸진 채 속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소풍이 파하자마자 그 설렘을 주체 못하고 가랑이 밑이

불이 나도록 달려 대문 멀리 밖에서부터 “어머이~”를 소리쳐 불러서

일손 바쁘신 어머니를 마루에 앉혀드리고

속주머니를 뒤집어 까내 엿 봉지를 꺼내노라면 엿과 종이와

핏빛 단풍잎이 함께 떡이 된 채 속주머니에 달라붙은 것을

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조심스럽게 간신이 떼어내셔서

내 입에 한 알, 어머니 입에 한 알을 기분 좋게 넣으시고,

“앗~따 우리 아들이 사온 것이라서 참말로 달고 맛있다!!~”라시며

흐뭇해하시고 대견해 하시던 그 때 그 시절의 소풍만큼이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가는 소풍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이 어디 있으랴?

소풍이고자 했던 삶도 현실을 외면 할 수는 없는 것이라서

결혼은 곧 두 사람이 반 씩을 버려 하나가 되어가는

고난도의 융화 과정이라서

때로는 작은 소홀함에 서운함이 생겨나고

작은 실수 하나에 미운 마음이 싹이 트며

가끔은 원망과 한숨으로 배신감과 불신을 키우기도................

그 모든 근원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그 사랑에 지지고 볶이면서도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성격과

정서 차이를 조금씩 조금씩 극복해 나가며

사랑의 깊이를 시험해 가는 동안 우리 부부에게

귀하고 사랑스런 생애 최고의 선물이 주어진다.

생명의 신비함에 그저 놀랍기만 한

예쁜 딸아이와 듬직한 아들을 두 살 터울로 얻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이며 얼마나 소중한 인연의 연속인가?

우리 부부만의 소풍에서 다소 적적함을 한순간에 털어내며

두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리 둘의 꿈이고 희망이며

행복의 원천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으리라.

 

이제 중년을 훨씬 지나 초로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밑에 서있다.

휑한 이마에 주름은 깊고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두 아이들은 장성하여 이제 우리 가족의 둥지로부터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아득히 먼 옛날 나와 내 아내가

그러하였듯이 아이들 또한 우리 곁을 떠나리라.

우리처럼 또 그렇게 스스로 자신들만의 소풍을 준비하고,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 것처럼 당신께서 이어오시고 계시는

이 세상 소풍 길에 언제나 가까이에 늘 상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아내와 내 아이들과 이 세상 함께해온 긴 시간들이

비록 풍족함을 누리고 호의호식하며

찬란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부끄러울 것 없고 부족함 없는 해맑은 청춘이었고,

거짓 없이 누릴 만큼 누려왔고 진정으로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이었다.

내 아버지처럼 내 아내와 아이들한테 비운으로 인한

운명의 빚을 지지 않았고 내 어머니처럼 내 아이들한테

힘들고 고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곧 내 둥지를 떠나갈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30년을 한결같이 나 하나만을 위하고 헌신하며 살아준

아내가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벌써 유효기간 만료를 코앞에 둔 중년을 지난 초로인생이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서 영화를 누려 본들 무었하리?

 

만물이 생동하고 화사한 봄꽃이 지천에 만발이다.

목련꽃이 탈상을 하고 개나리 진달래가 희색이 만면이다.

석촌호수변 벚꽃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화사한 벚꽃에 영혼을 붙들린 사람들처럼

향긋하고 아름다운 꽃 터널 속을 홀린 듯

설레는 마음으로 소풍 나들이객으로 물결을 이룬다.

 

또 한 세월의 강 여울진 나루터에서

돛단배에 몸 싣고 노를 저어가며 나아가듯이

쉰여섯 초로와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이 세상 소풍을 떠난다.

머지않은 어느 날 아이들이 곧 저들만의 소풍 길로 길이 갈리고 나면,

아내와 단둘이 얼굴 마주 바라보며 물살을 따라서 가리라.

꿈 크던 고등학교 시절 노고단 소풍에서 내려다보았던

그 천국 같았던 운해와 서녘하늘을 곱게 물들이던

그 아름답던 석양을 기억하며,

나와 내 아내의 뒷모습이 그 구름과

그 고운 노을빛을 닮아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2013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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