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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특별한 일상

어느 한여름 밤의 낭만





이른 아침
서둘러
새벽장 가신
울 어머니,

해거름 녘
장 보따리 위에
석양을 덤하여
얹으신 채,
땀 절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 시고
십리 길을 되돌아
질풍처럼 오셨네.

작두새미
허드레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신 후,
한 바가지를 퍼내셔
땀을 씻어 내시고는
수박 덩이를
첨벙 빠트려 옴싹
담가 놓으시고,

정제 문턱을
숨 가삐 넘나드시며
장거리를 다듬고
집 안팎을 여미시며
저녁을 지어 올리신 후,
수저 놓기 바삐
이른 저녁 밥상을
서둘러 거두시고
와상 한 귀퉁이
모깃불을 지피셔,

우리 4 남매를 불러
둘러앉히셨네.

보란 듯 단칼에
쩍 소리가 나게
수박을 자르시고,

"앗따 잘 익었네~"

분위기를 띄우시며
뻘건 속살이 꽉 찬
수박 덩이를
이리저리 돌리시며
또각또각 소리 나게
조각 쳐 자르신 후,
한 조각 씩을
냉큼냉큼 엉겨 주시고
당신께서도
한 조각을 집으셔
한입 베어 무시고는,

흐뭇한 표정을
어둠에 흘리시며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시곤,

"앗~따~^^
하늘에 별이
총총흔 걸 본깨
내일도 날이
솔차니 뜨걸랑갑다"
시며,

별안간
모깃불을
들쑤석이시곤
부채질을
연거푸 하시며
한여름을 달래시던
울 어머니 머리 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모깃불 연기가
어머니의
고단하셨을 하루의
노고를 거두어
가시는 것처럼,
별빛 무수한 밤하늘을
어른거리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던,

고단하셨을
내 어머니의
한여름
낭만의 그 밤이
불현듯 못 견디게
그리워집니다.

울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수 세월이 지난
이제야,
당신께는 힘들고
고단하셨을 테지만
지금은 제게
남겨진 소중한
한여름 밤의
낭만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새삼
깨달으며,

가슴이 뭉클
뜨거워지는
밤입니다.


2024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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