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07:00)
다소 먼 현장을 향해 출근길을 서둔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의뢰를 받고 찾아가서 현장 실측을 할 때부터
6층 건물치고는 너무 높고 공사여건 또한
만만치가 않아 괜스레 맘이 쓰이고 불편스러운
달갑잖은 현장이었는데,
그 것 마저도 내게는 행운이 되었는지,
시안과 견적에 낙점을 받아 공사 수주를 받은 끝에
이틀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또 하필 날씨마저 첫눈에 첫 영하권으로 기온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말, 주일을 넘겨 월요일을
건너뛴 후, 마침내 오늘을 기해 크레인장비를
현장에서(08:30) 만나기로 약속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용인 수지 현장으로 출정한다.
어제 공구 및 작업 자재를 수십 번 챙기고
확인했는데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행여 몰라 사무실에 들러 이 것 저 것 몇 가지를
더 찾아서 챙겨 넣고 나서야 비로소 겨우 안심하고
현장으로 가는 길을 다시 재촉한다.
불과 2,3년 전만 같았어도 현장 여건에 따로 신경을 쓸
필요조차도 없을 만큼 일에 관한한 자신감과 함께
일머리를 머릿속에 사진처럼 그려가면서 일사불란하게
해치워 왔건만, 대충 생각해 챙겨 나가고도
현장에선 부족한 공구나 자재로 불편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완벽했었는데, 근래엔 현장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덜컥 겁부터 나면서 걱정이 앞서고
현장에 도착 해보면 파악을 못한 부분과
빠트리고 온 것이 태반여서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나마 일을 마치고 철수할 땐 여기 저기
흘리고 다니는 공구나 자재로 인하여 다시 현장을
되찾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한다.
이제 내 자신마저 온전히 100% 신뢰치 못하는
서글픈 현실!!~
이번의 현장 작업도 혼자 대들기는 다소 벅차고
6층 유리부분 작업이라 크레인 바가지에 둘이
올라서 작업하기에는 흔들림 정도나 붐 대의 유격과
로링 으로부터 안전 확보가 어려울 것 같아
동료 도우미를 포기하고 혼자 해치우자
결정을 내리기까지 밤이면 잠을 설쳐가며 망설이고
또 생각하고 고민을 해온 터였으니 이게 다 어쩌면
나이 들어감서 느끼게 되는 누구나 인정하기 싫은
늙어가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왠지 모를 서글픔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도 잠시,
갑자기 가슴이 쏴 해지며 머릿속이 투명하게
떠오르는 이름
아~~
손형!!~ 그대가 있었던 것을!!~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국을 마다않고 함께
달려가 온갖 옥상 난간을 안방처럼 누비고 다니며
때로는 옥탑 위에 옥탑, 빌보드 양철 판에 수직으로
나란히 매달려 외줄 로프에 깔판을 타고 앉아
빵조각을 씹어가며 서로에게 힘과 위로와 의지가
돼주었던 그대가 있었던 것을!!~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인치로프 작업으로는
국내에서 최고의 한계라는 인터콘티넨탈호텔 건물에서
내리 3년을 크리스마스 프로젝트 공사 시공을 전담하며
그 아슬아슬한 로프작업의 한계(80여m)를 체험하면서도
여유만만하고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시절을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공유했었건만,
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 다시는 못 올 그 먼 황천길을
그렇게 홀연히 떠나 가버렸는지?
참으로 애석하고 원망스러울 뿐이오.
오늘은 정녕 그대가 새록새록 그립고 생각나는
긴긴 하루가 될 듯 싶으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벌써 장비는 도착 해있고
우뚝 솟은 건물은 여전히 불편스런 모습으로
위압감을 풍기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애써 외면하며 장비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난 후
차근차근 자재와 공구를 하나하나 세심히 살피고
챙기면서 심호흡으로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킨다.
이내 버켙에 올라 코브라를 걸고 나자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붐 대가 하늘로 치솟으며
마침내 그 전투가 시작된다.
모든 잡념과 두려움을 다 버리고 미리서 생각 해둔
작업 순서대로 빠르고 민첩하게 손과 발과 몸을
움직여 유리에 접착된 시트 물을 벗겨보지만
아침녘 찬 기온 탓과 접착이 꽤 오래된 점이 가중 되어
좀처럼 마음과 같이 쉬 벗겨지지를 않는다.
한 때는 오히려 흔들리는 붐 대의 로링을 즐겨가며
마치 곡예 하듯 일손 끝이 신속 정확 능수 능란 하였건만
처음 준비해 사용 해보는 코브라 생명 줄이 등 뒤에서
매어져 버켙 고정 고리에 연결이 되어 있어
가끔 엉키기도 하고 동작에 제약을 받아 부자연스러움과,
버켙 양끝으로 걸음을 옮길 때면 심한 흔들림으로
불안과 위험이 가중되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더구나 좌우상하로 조금씩 이동을 필요로 할 때면
붐 대의 심한 유격에 깜짝깜짝 놀라 심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점점 높아만 간다.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하고 싶지만,
예전 같지 않은 순발력과
어쩌지 못할 현실 앞에
새삼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손형!!~
이러는 나를 거기에서 보고 있는 거요?
이렇게 떨고 있는 날 내려다보며
웃고나 있는 건 아닌 게요?
맘껏 웃을 수 있으면 웃으시요!!~
난 그러는 당신을 추억하며
예전의 한 때처럼
웃으시는 그대를 마음으로 의지하며
안전하고 깔끔하고 멋지게
이 현장을 마무리 할 거요.
이처럼 떨고 있는 나를 끝까지
잘 지켜봐 주시길 바라오!!~
예정보다 한 시간을 넘게(13:00)
오전 공사를 마무리하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곧장 작업에 착수,
3시간45분 동안 버켙 속을 아슬아슬 맴돌며
기 설치된 플래카드를 철거와 동시 다시
신 플래카드를 설치하는 작업에 온 신경을
다 쏟다보니 드릴작업을 할 때 마다 얼마나
긴장하고 위축이 됐었던지 손가락이 쥐가 나면서
오그라드는 경직이 일어나 한동안 팔목과
손가락을 연신 주물러가며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힘에 부쳐서 등엔 땀으로 끈끈하고,
입은 바짝바짝 말라 단내가 풀풀거리며
가끔씩 멍한 현기증에 반딧불이 날아다니듯 한 허상을
쫓으며 아찔한 순간을 겨우겨우 견뎌낸 끝에
팔과 얼굴과 옷엔 플래카드와 벽체로부터 묻어난
먼지와 때로 얼룩이 뒤범벅이 되고나서야
간신히 작업을 마무리 하고 버켙으로 부터
탈출할 수가 있었다.
참으로 내키지 않았던 공사~
참으로 힘들고 위험했던 공사~
참으로 심란하고 두려웠던 공사~
참으로 마음조리며 긴장했던
가슴 두근두근 거린 하루였으리라.
광고주와 공사 전모를 둘러보며 현장 확인 결과
만족 해 하는 표정에 나름 보람을 느끼고,
앞서간 옛 친구 동료를 떠올리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과 바람으로 심리적 위안과
안정을 찾으며 힘겨웠던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차량 불빛에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차도에 어둑어둑 내리는 땅거미를 휘저으며
쳐진 어깨를 추슬러 귀가 길을 되짚어 간다.
2015년 12월 1일